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연주 Jul 19. 2019

간직한 것은 잊히지 않는다

2017년 여름 일기

아들의 학교에서 보내온 학부모 설문지가 있었는데, 1번 문항이 "자녀의 나이로 돌아간다면 부모님에게 바라는 것을 쓰시오"였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에 대한 기억이 변변찮은 나로서는 그 이후의 시간에서 유추해 쓸 수밖에 없다.  


요새도 친정 엄마의 음식 만드는 솜씨가 별로인데, 지금은 사 먹을 수나 있지, 그때로 돌아간다면 분명 엄마 음식에 꼼짝없이 묶여 고통받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나는 "엄마가 요리를 잘했으면 좋겠습니다"고 쓰고, 아빠는 "발뒤꿈치에 로션을 듬뿍 발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썼다.  


커가면서 나는 아빠의 갈라진 발뒤꿈치에 시선이 머물곤 했다. 여름에는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맨발로 일하고, 한겨울에도 온종일 밖에서 몸을 쓰니 아빠의 발은 갈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빠가 병석에 누운 후로는 종종 발과 다리에 오일을 발라드리곤 했는데, 협곡처럼 틈이 자리잡은 발뒤꿈치는 도저히 매끈해질 방도가 없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염을 하는 동안에도 아빠의 죽은 몸이 무서워서인지, 믿기지 않아서인지 눈은 아빠의 발뒤꿈치에만 머물렀다. 아빠의 고된 삶을 발뒤꿈치로 기억하는 것은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자라면서 나 역시 부모로부터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았다. 신기하게도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아빠를 만난다면 바랄 것은 오직 저런 소소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날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