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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주 Jul 19. 2019

어둠의 맛

2017년 여름 일기

5-6년 전에는 야간산행에 잠시 재미를 붙였다. 어느 여름날 저녁 7시쯤, 친구와 김밥 한 줄씩 들고 과천 정부종합청사 뒤 관악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대략 자정이 안되어 서울대학교 캠퍼스에 도착하는 동선이었다. 



관악산은 제법 큰 산이고 산세도 깊어 낮에도 주변을 둘러 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가파른 편이라 헤드라이트 불빛만 따라 오르려고만 든다. 그래서 야간산행에서 제일 무서운 건 다름아닌 사람이다. 내 숨소리만 들으며 걷는데만 집중하다가 사람을 마주치면 서로 소스라치게 놀란다. 



서울대 뒷산에 도착하기 전, 내리막길 중간 즈음 관악산 어둠은 더 짙어졌는데, 그 곳이 산 정상의 조명도, 산 아래 캠퍼스 빛도 들어오지 않은 구간이기 때문이다. 오르막의 긴장이 땀과 후덜거림으로 흐물거리는 구간이기도 했다. 



갑자기 좁은 길을 지나 빠지는 데 눈에 들어온 작은 소깍. 정상에서부터 산을 타고 흐른 물줄기가 계단 웅덩이를 만들며 흐르고 있었다. 샤워나 할까, 등반 후 한 시간 가량의 침묵을 끊고 친구가 말했다.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친구는 옷을 훌훌 벗고 들어가고 있었다. 어둠이 북돋은 용기로 어느새 우리는 나란히 물 속에서 목을 내밀고 있었다. 수달처럼. 



처음에는 누가 올까 싶어 두근두근했지만 막상 물 속에 있으니 마음이 서늘해지면서, 숲의 일부가 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숲의 고요를, 어둠의 매직 아워를 즐겼다. 그렇게 5분 후, 몸도 서서히 서늘해지고 친구가 먼저, 뒤따라 나도, 수건으로 수달의 티를 대강 닦은 뒤 우리는 다시 민간인이 되어 서울대 공대 농구장 가로등을 발견하며 내려왔다. 



가끔 그날의 야간 산행에서 친구가 먼저 나서지 않았다면, 어둠이 더 짙게 내리지 않았다면, 평생 이런 경험을 할 일이 있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밤은 보통 부정적인 '영혼의 암흑'을 의미한다. 하지만 말러의 교향곡 7번처럼 밤의 어둠은 어느 연인들의 부끄러움, 잘못을 덮는 포용이고, 새로운 별을 향한 여정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어둠 속에서 블랙은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지니는가. 그 밤 나는 잊지 못할 새로운 어둠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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