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연주 Jul 19. 2019

일요일의 조조클럽

2017년 여름 일기

자라면서 하느님을 믿는 대신 책이나 영화를 믿기로 했다. 어릴 때는 매주 분량의 죄를 지었고, 매주 회개했다. 좀더 크고 나니, 산다는 것 자체가 죄였다. 매일 사람을 미워하고, 입만 열면 거짓말, 자주 간음했다. 죄를 용서받는 대신, 복을 바라는 대신, 책 속에, 영화 속에 나같은 인간을 보며 기뻐하거나, 슬퍼하고, 누군가를 동경하기로 했다. 하지만 매주 정해진 시간, 미사를 완수하는 것과 같은 성취감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일요일의 조조클럽은 그 성취감을 위해 이름 붙였다. 동거인과 일요일마다 조조 영화를 보기로 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8시 전후 슬리퍼를 끼워 신고 우리는 동네 영화관으로 향한다. 8시 전후의 영화들은 다양하고, 취향은 다르므로, 격주로 우리는 각자 상대가 모르게 블라인드 예매를 하고 상대가 선택한 영화를 함께 본다.


120분 러닝타임 중 60분은 잠드는 영화, 마음이 내내 가라앉아 하루 종일 머릿속에 떠도는 영화, 어이 없어서, 찜찜해서 영화가 끝난 후 말이 없어지는 영화도 있었다. 하지만 공통적인 감상평은 "매번 끊임없이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내는 인간이란 참 위대하다"이다. 매일 회개하면서 매일 죄를 짓는 인간들이나 망해도 이야기를 계속 지어내는 인간들이나, 다를 바가 없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매주 회개한다. 신의 위대함을 잠시 느낀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 소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