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시필사
먼바다를 헤엄치다 보면 예상치 못한 것을 만나게 됩니다. 이게 나를 죽일 수도 있구나 생각하면 다시 바다에 나가는 일을 망설이게 되죠.
세상에 혼자 남겨졌을 때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하면
위로가 되던가요?
여기 두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사랑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망설이는 사람은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39', 유진목, 『식물원(아침달)』
유진목 시인은 '시인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식물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입장료는 1만 원이며
제한시간은 없습니다.
입구와 출구가 다른 곳에 있으니
이 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번호로 나열된 하나의 꼭지에는 복숭아나무, 신나무, 자귀나무 같은 것이 붙어 있다. 39라고 적힌 위 시에는 유목(流木, 물 위에 떠다니는 나무)이 붙어 있다. 처음에는 표지가 예뻐서 눈길이 갔다가, 펼치고는 난데없는 사진들, 이것이 사건인가, 하며 읽다가 두세 번 책을 들었다 놨다 하는 사이에 시인의 힌트를 발견한 것이다.
이 시집의 '32', 아래 문장을 보고 나의 우뇌는 반해 버렸다. 그리고, '자귀나무'라는 힌트를 보고 좌뇌는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너처럼 고운 빗을 가지고 있었어. 그걸로 내 머리를 빗겨주었거든. 널 보면 그때 생각이 나."
올해 가장 아름다운 시집은 유진목 시인의 식물원.
#유진목 #식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