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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주 Nov 10. 2018

휴일

30일 시필사

내가 매일 몇 번을 손바닥으로 차근하게 만지는 배와 옆구리

생활은 그처럼 만져진다


구름이며 둥지이며 보조개이며 빵이며 고깃덩어리며 악몽이며 무덤인


나는 야채를 사러 간다

나는 목욕탕에 간다

나는 자전거를 타러 간다

나는 장례식장에 간다


오전엔 장바구니 속 얌전한 감자들처럼

목욕탕에선 열탕과 냉탕을 오가며

오후엔 석양 쪽으로 바퀴를 굴리며

밤의 눈물을 뭉쳐놓고서


그리고 목이 긴 양말을 벗으며

선풍기를 회전시키며

모래밭처럼 탄식한다


「휴일 」, 문태준, 『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중고 거래에도 종종 등장한다. "생활감 있음". 듬직한 뱃살이 혼마구로 집에서는 1등급 오토로로 불리지만, 이 시에서 '아, 그 생활감이구나'. 


뭐든 생활로 오면 허세가 좀 빠진다.


휴일이니까 미뤄둔 잠도 좀 자고 오랜만에 아들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서로 "바빴어"하고, 휴일이니까 라면 치트키도 써본다. 책도 잠깐 읽다가 졸리면 다시 잠들고. 빨래도 널면서 집 전체를 음악 소리로 채운다. 


이런 사소한 일들을 벌이기 위해 평일동안 지불한 시간이 많다는 아, 생활의 발견. 


#문태준 #내가_사랑하는_문태준_시인 #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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