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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주 Nov 11. 2018

응원

30일 시필사

십 년째 농협에서 문자가 온다

이만 원이 입금되면

이만 원을 출금한다


10월 27일마다 축하가 온다

쿠폰을 보낸다 이마트가

미역국도 먹고 돈도 좀 벌고 방에만 있지 말고

결혼 생각도 하고 엄마는 아들을 사랑한다고

문자가 온다


1월 1일에 전화가 온다

해돋이 보고 있냐 누구세요

김승섭이 핸드폰 아닙니까? 아닌데요

죄송합니다 근데 지금 해 뜨고 있어요

김승섭 씨 친구 덕에 창문을 연다


오늘은 농협에서 문자가 왔다

삼백만 원을 입금했다 희망머니가

금세 잔액 전부를 출금했다 김승섭 씨가

문자 통지 수수료로 오백 원이 출금되자

잔액은 -500원이 되었다


김승섭 씨에게 도착한 오래된 문자들을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았다

물고기를 따라가다가

사막에 잘못 도착하는 펭귄들처럼

계속해서 도착하는 문자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힘차게 응원합니다


「 응원」, 임솔아, 『 현대시학』 2014년 11월



최근에는 통 연락이 없지만, 내게도 늘 어떤 권사님을 찾는 전화가 오곤 했다. 주로 할머님들이었는데,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으니 권사란 직분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나이든 분들의 특성상, 어느 때는 조심스럽고, 어떤 때는 막무가내이기도 했다. 다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여, 내가 더 죄송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나 하며 실종된 전화번호 수신인 대신 발신인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힘차게 응원합니다."


지금 쓰는 휴대폰 번호 이전의 번호는 일부러 번호이동 알림서비스를 받지 않았다. 내 폰에도 몇 백 명의 사람이 담겨 있지만, 이제는 아예 기억도 나지 않는 인연들이 있다. 닿으려고 하는 사람이면 어떻게든 연락이 되겠지, 그리고 "자니...?" 같은 끊긴 인연들과 쓸데없는 연락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이렇게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전화를 받으면,

임솔아 시인의 이 시를 읽으면,

나를 찾는 누군가도 있는 것일까 싶어진다.


어쨌든 연락처도 모르는 누군가들을 응원한다. 얼굴은 모르고 휴대폰 번호로 엮여진 누군가를 궁금해 한다. 안부를 전해본다.


#임솔아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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