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시필사
누군가를 미행하는 기분으로 걷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인데 말입니다
한 가지 방법에서 사거리가 나오고, 또 오거리가 나옵니다
또 사람들은 얼마든지 쏟아져 나올 것 같습니다.
개 한 마리도 보았습니다
뒤돌아서는 개는
왜, 라고 짖을까요?
개와 나의 관계를 생각할까요?
개와 나의 관계를 생각하며 걷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인데 말입니다
오늘은 누군가를 미행하는 기분으로 걷다가
그의 뒤에서 닫힌 문을 생각했습니다
나의 앞에서 닫힌 문을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매우 슬펐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엉뚱한 슬픔에게 발각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뭐 하니?
산책하는 72가지 방법을 궁리하며 걷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인데
햇빛이 더 기울고
햇빛이 완전히 일자로 누워버릴 때까지
왼쪽 얼굴만 서쪽 하늘처럼 발갛게 태우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인데 말입니다만
「산책하는 72가지 방법」, 김행숙, 『에코의 초상』
미행은 종종 했는데, 산책을 좋아하진 않는다. 요즘 같은 미세먼지에 산책이라니. 하지만 산책 생각은 자주 한다. 사무실에 앉아 창밖을 보며 몇몇 날에는 산책하기 좋은 날이야, 했다. 산책을 할 때는 관찰자가 된다. 시간의 포착자가 되어, 탄천의 호박이 무럭무럭하구나, 여기 왜가리가 살았나 조사한다. 강아지풀은 너무 웃자란 게 아닌가 걱정한다.
산책을 할 때는 과거와 미래를 떠올린다. 이 시에 나오는 것처럼 과거의 누군가를 미행하기도 한다. 미래의 나를 뒤쫓는 심정으로 다그치기도 한다. 그러다가 현실로 돌아온다. 산책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다. 돌아오는 그 곳에는 닫힌 문도 있고, 상상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왔어?"하며 익숙하게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산책하는 72가지 방법을 소리내어 읽다 보니, 오늘의 산책 끝.
#산책하는72가지방법 #김행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