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버린 이름

시필사

by 정연주

오래 찾아 돌아다닌 명찰은

건조대 외투 안주머니에서 나왔다

온갖 빨래들 사이에서

풀코스 세탁을 거친 것인데

물로 씻은 길상호는

잉크가 얼룩진 채 젖어 있었다

습기 가득한 명찰을 목에 걸고

아침이 두통처럼 무거워졌다

깨끗한 이름으로 살고 싶었으나

희미하게 번지기만 하던 날들,

젖은 이름을 빼 말리려다

나는 그만 찢어지고 말았다

이름을 버린 오전 현관문 앞에는

수신인을 잃어버린 편지가

빗물에 퉁퉁 울어 있었다


'아침에 버린 이름', 길상호, 우리의 죄는 야옹(문학동네시인선 087)



할 수 없는 일들과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명확해지는 기분이다. 이 도메인에 들어온 지 1년 조금 넘었다. 입사하고 1개월 즈음까지만 해도 몰라서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몇 개월이 흐른 후에는 도통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고, 또 몇 개월이 흐른 후에는 이별해야 하는 이유를 자꾸 찾는 사람처럼 화가 났다가 이제는, 첫 문장 그대로다.


뇌는 불확실해야만 더 나아간다고 하는데, 그동안 뇌세포의 스냅스들은 더 촘촘해졌을까, 새로운 세포들과 더 많이 악수했을까. 지나고 나면 늘 아쉽다. 익숙해서 해결했던 순간들, 비슷하면서 다른 일을 하다가도 반가워하던 어떤 리스크들. 아, 전혀 다른 도메인으로의 이직은 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같은 것인가. 길상호 시인의 “습기 가득한 명찰” 같은 것인가.


아, 어쩌란 말인가 트위스트 추면서 내일 다시 출근하겠지. "I'm in the Mood for Love" 나를 사랑하는 에너지는 어디에 있을까. 나를 사랑하게 하는 분위기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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