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필사, 조해주
젖은 개처럼 얌전히
타인에게 손을 맡기는 시간이 있다
타인은 나의 반대편
왼쪽과 오른쪽이 악수
타인은 나보다 나의 오른쪽을 더 잘 돌본다
타인은 나보다 더 자주 손의 안부를 묻는다
아프지는 않니?
다정하게 굴면 잠이 와, 나는 고개를 숙인다
일요일 오후
네모난 햇빛이 잠든 개와 근소한 차이로 놓여 있고
순간 포옹했다고 생각한 건
타인과 나와 개 중 누구의 꿈이었는지
탁자의 시선으로 보자면 나는 꾸벅 졸다가
엎질러질 뻔했던 순간
괜찮니?
방금 전에 나는 품 안 가득
팝콘처럼 튀어나오는 가슴을 주워 담았는데
타인의 손은 조금 뜨겁다 싶고
타인의 손에 반쯤 덮인 나의 손은 정말로 있는 걸까
일요일 오후
커튼과 창문과 부드럽게 어긋나고
잠에서 깬 개가 탁자 위로 고개를 내밀고
나와 타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일요일’, 조해주,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아침달, 2019)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약속이 없는 일요일. 봄볕에 느리게 흐르는 강을 보는 것같은 일요일.
잠깐 졸고 나면 ‘품 안 가득 팝콘처럼 튀어나오는’ 설렘을 주던 주말이 어느새 끝나버리고. 친구는 일요일 아침 일어나 TV를 틀었을 때, 서프라이즈가 나오면 왜인지 이미 일요일에 진 기분이 든다고도 했다.
어찌되었든 일요일이 매주 돌보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