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시필사
어떤 나라에 '눈사람 택배'라는 게 있다 하네요
눈이 내리지 않는 남쪽 지방으로
북쪽 지방 눈사람을 특수포장해 보낸다 해요
선물도 그쯤 되면 신비 아닌지요
받을 때 눈부시지만 녹아 스스로 자랑을 지우니
애초에 부담마저 덜어줄 걸 헤아렸겠지요
다시 돌아간다면 그리 살고 싶네요
언젠가 녹을 것을 짐작하면서도
왜 손가락을 걸었던지요
그때 그 반지, 눈사람 속에 넣겠어요
동그라미 두 개가 허공을 품었다 놓아준 것처럼
지우는 법을 가르쳐준
눈사람
그런 선물이라면
그런 아득함이라면
「선물」, 이규리,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문학동네)』
언젠가 친구가 이규리 시인의 「저, 저 하는 사이에」를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시가 좋아 몇 편을 검색하다 말았는데, 불쑥 지인이 읽던 시집이라며 이규리 시인의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를 내민 것이다. 읽으라면서, 가지라면서.
그 시집에는 '특별한 일'이라는 시에 포스트잇이 하나 붙어 있었고, 커버 안쪽에는 언제 잡았는지 모를 모기가 바짝 말라 붙어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밑줄이 몇 개. 이렇게 누군가 읽은 흔적이 있는 책을 읽는 건 기분이 좋다. 귀를 접은 페이지가 같으면 괜히 친해진 기분이 들고, 이미 그어진 밑줄이 있으면 '너와 달라' 하면서 경쟁적으로 밑줄을 긋게 된다.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의 발견과 달리 지인이 초이스(?)한 문장과 시를 발견하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는 특별한 힌트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당신 마음 알 것 같아요' 하게 된다. 마치 이규리 시인의 시처럼.
낱낱이 고독을 말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아챌 때가 있다. 각자의 외로움을 지키며 다시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과, 언젠가 녹을 것을 알면서도 손가락을 거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삶의 사실들 때문에 간혹 마음이 아리지만, 그래서 또 선물같은 순간들이 우리 삶에 생긴다. 담대하게 살아야지.
#선물 #이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