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시필사
눈뜨고 그냥 있다, 난 안경이니까
결코 무엇을 보는 법도 없다, 난 그저 안경이니까.
저 화덕 위의 키조개가 뭘 보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냥 있다.
더더구나 나는 눈을 감을 줄 모르니까.
나는 얼음을 먹는 시간과도 같다.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도 모른다.
모래가 파도를 갉아먹는 것과도 비슷하다.
또 파도가 몰려오니까.
나는 보고, 느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무색이다.
나의 왼쪽 눈알엔 바다가 있고
오른쪽 눈알엔 하늘이 있다. 그게 다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 내가 있다. 그게 다다.
나는 바닷가에 묶여 이리저리 흔들리는 뗏목처럼 그냥 있다.
10년 후에 어디에 있을 거냐고 묻지 마라.
나는 그냥 있을 거다. 난 안경이니까.
아마 다리를 오므리고 누워 있을지도 모르겠다.
벗을 때나 입을 때나 나는 그냥 있다.
나한테 오는 사람은 왼쪽 하늘과 오른쪽 바다
두 개로 나뉘어서 온다.
그러니 안경에 대고 말하는 건 난센스다.
제 귀에 대고 말하는 거와 같으니까.
내 앞에서 우리의 기억 운운하는 건 난센스 중에 난센스다.
그렇다고 내가 하얗게 눈먼 것은 아니다.
눈뜨고 그냥 있는 거다. 멍하니란 말 참 좋다.
멍하니? 멍하다.
잠수부 아줌마가 있다.
25미터 산소줄을 잠수복에 매고
우주인 같은 철모를 쓰고 바닷속으로 들어가
키조개를 줍는다.
하루 8시간 심해 속을 걸어 다닌다.
3시간마다 바다에 매어놓은 배에 올라와 우유 마시고 빵 먹고
다기 모래를 뒤진다.
목줄에 묶인 검은 물개 같다. 피부는 미끈거린다.
키조개는 깊은 바다 밑 모래사막에 숨어 있다.
아무도 없는 곳. 키조개와 갈고리와 산소줄. 그리고 물안경이 있는 곳.
그리고 물안경 뒤에 아줌마가 있는 곳.
큰 얼음을 갈아 렌즈를 만든다.
그 렌즈를 입속에 넣어본다.
바다에 비 온다.
바다는 말한다.
나는 눈뜨고 그냥 있다.
난 안경이니까.
「안경은 말한다」, 김혜순, 『슬픔치약 거울크림 』
중학교 때 처음 안경을 썼다. 왼쪽 0.8, 오른쪽 0.6으로 스타트를 끊었는데, 그 뒤 시력은 '디옵터'라는 단위가 무색하게,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마이너스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안경을 쓰기 시작하면 누구나 안경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잠들기 전 안경을 벗고, 일어나는 순간 안경을 낀다. 처음에는 이 번거로운 물건이 시간이 지날수록 몸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안경을 낀 채 세수를 하거나, 안경을 낀 줄 모르고 얼굴에 무언가를 대보며 부딪친 적도 다반사다. 선글라스나 물안경처럼 다른 기능을 추구하는 안경은, 이미 안경을 낀 자들에게는 영 불편한 일이다. 기온이 떨어지면 최악이다. 따뜻한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우스꽝스러운 얼굴 장착이다. 우산을 쓰기 애매한 싸락눈이라도 오면 더 최악이다. 우는 것인지, 미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안경과 더불어 이십 년 넘게 살다 보면, 안경을 벗은 내 얼굴을 보여주는 것은 마치 알몸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렌즈를 끼고 선명하게 보이는 그 순간에도 나는 도저히 안경을 벗을 수 없는 겁쟁이가 되었다. 이게 모두 안경 탓이다. 하지만 내가 고독사할 때도 나를 눈뜨고 지켜보는 이는 안경 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