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시필사
아무도 모르게 체조 선수가 되었다.
옷 속에 팔과 다리를 잘 집어넣은 채로
나는 태연하게 걸어 다닌다.
잠 속에서만 팔다리가 길어진다는 건
억울한 일이지만
줄 없이도 줄넘기를 할 수 있는 밤들.
나쁘지는 않다.
달리면 나 대신
공중의 시간이 부드러워지지만
아주 약간일 뿐.
내가 나에게로
어이없이 돌아오는 일은 없다.
세상에는 언제나
한 명의 체조 선수가 부족하고
나는 심장이 뛴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무척 아름답고 투명한 일이다.
「비밀과 거짓말」, 신해욱, 『생물성』
일단, 관계나 조직에서 부족한 체조 선수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나’라고, '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