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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주 Nov 22. 2018

그림자 사업

30일 시필사

저의 직업은 그림자 소매치기입니다. 뒷모습을 버린 사람들에게서 그림자를 슬쩍하는 건 아주 손쉬운 일이지요. 뒤따라다니며 주사기를 대고 쭉 빨아올리면 그것으로 그만이니까요. 놀라 뒤돌아보던 사람도 홀쭉해진 그림자를 알아보는 일은 없습니다. 증거도 없이 멱살부터 잡는 놈이 가끔 있지만 미리 덩치를 불려둔 바닥의 나를 보여주면 열이면 열 꽁무니를 빼고 도망가지요. 그렇게 모아온 그림자들은 농도에 따라 나눠 얼려둡니다. 조울증을 다스리는 귀한 약이 되기도 하거든요. 조증이 최고치에 달했을 때 투여하면 그야말로 직방이지요. 가끔 가난한 사람들이 밤의 어둠도 그림자라고 잘못 뽑아 수혈했다가 별빛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는데, 그래서인지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 벌이가 쏠쏠합니다. 어떠세요. 저와 손잡을 생각 없으신가요?


「그림자 사업」, 길상호, 『우리의 죄는 야옹』



우화 같은 시. 요며칠 나의 그림자는 비대해져 있었으므로. 이 자에게 좀 팔아보고 싶었다. 항상 진실은 그림자에 가려지기 마련이다. 실패를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나의 그림자는 비대해져 있었으므로. 지방제거라도 하는 마음으로 털어 놓았고, 그림자는 다소 홀쭉해졌다. 엊그제 저장한 시를 날씬한 오늘 다시 읽다 보니, 이제는 따뜻하고 다정한 김소연 시인의 그림자론이 떠오른다.


덧붙이는 글.

김소연 시인의 ‘그림자론(시집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에 수록)’ 중에서 (길지만) 좋아하는 단락을 옮겨 적는다.


이 세상에 빛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면서, 동시에 사물들로 이 세상이 채워져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그림자이다. 그림자 없는 사물들은 실감을 확보하질 못한다. 그림자가 있어야 평면도 입체가 되고, 신발도 땅을 디딘 것처럼 되며, 나무도 뿌리를 내린 것처럼 된다. 그림자가 없다면 그것은 날고 있는 것이거나, 영혼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거나, 거짓이다.

직진하고자 하는 빛의 결곡한 욕망을 사물들은 완강히 가로막는다. 그때 그 자리에 그림자가 생긴다. 꽃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빛이 사물에게 진 자리에 그림자가 맺힌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림자는 빛과 사물의 관계에 대해 우리에게 묵언의 말을 건네고 있다.

사람을 바라보기가 힘겨울 때가 있다.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이거나, 나에게 할 말이 많은 듯 보이는 사람일 때는 더하다.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색하고 고약하다. 그럴 때 나는 그 사람의 그림자를 본다. 그래서 길을 걸으며 이야기할 때가 좋다. 땅을 바라보는 척 하면서 그의 그림자를 바라볼 수 있으니까. 그와 내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있다는 사실을 그림자를 통해서 알 수 있으니까

나는 투명한 사물들이 지닌 투명한 그림자가 좋다. 유리잔의 그림자는 머금고 있는 액체를 검게 표현하면서 동시에 유리잔의 투명함을 투명하게 표현해 낸다. 유리창도 마찬가지다. 커다란 나무의 그림자를 바라보는 것도 좋다. 그 커다란 그림자 안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의 안 보이는 그림자를 짐작하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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