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시필사
왼손은 수십개의 사소한 실망들을 알고 있다 왼손은
조금 더 가까운 데서 생각한다 왼손은
먼저 떨린다
지붕 위에 내려앉는 새들의 무게와 함께
밤의 이동속도로
나의 왼쪽에서는 무언가
꿈틀거리는 기색
왼손에겐 친구가 필요하다
아주 분명한 친구
안개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목으로
악수를 청하는 친구
왼손이 좋아하는 것은
갑자기 왼손이 되는 것
안개야 양떼처럼 흩어질 수 있겠지만
그 순간 왼손은 사냥개가 되는 것
그것에 꽂히는 것
매일 오른손도 모르게
왼손이 사라진다
세어야 할 것들이 많은데
가리켜야 할 것들이 많은데
스르르 펴진 뒤에 왼손은
낯선 이에게 인사하는 데 천재
쥐락펴락 혼자 손금을 만들다가 불현듯
그것이 되는 것 역시
한낮의 거리에서 당신과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당신의 손바닥을 뚫고 튀어나간
나의 왼손은
「오른손은 모르게」, 이장욱, 『생년월일』
누구나 숨기고 싶은 것들이 있다. 좋아하는 마음이나 가난의 자국. 아니면 모르는 것을 들킬까 봐 이를 숨기기 위해 더 크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뭐든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런데 가장 숨기고 싶은 마음은, 결정된 것 없이 괜히 들뜨는 마음, 또 그로 인해 거절 당할 때의 실망 같은 것. 뭔가 요즘에는 세련되어 보이지 않아서.
왼손은 오른손보다 능수능란하다.
바디랭귀지 전문가들에게 버락 오바마의 악수는 유명하다. 오른손으로 악수를 하면서 왼손으로는 격려하는 듯 상대를 잡는, 일종의 내가 더 위야, 라는 고도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본다. 주짓수를 배울 때, 사범에게 어차피 남자에게는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니 여자랑 싸울 때 어떻게 하면 이기냐고 물었다. 상대가 오른손잡이면 왼손으로 머리채부터 잡으라고 했다. 아마 상대방이 오른손으로 똑같이 머리채를 잡으려고 하거나 얼굴을 때리려고 해도, 그 손에 막혀 뭐든 하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사랑하는 오즈는 오늘도 내가 울까봐 아침, 점심, 저녁, 확인한다. 그래서 울 때가 되면 오즈가 떠오른다. 사랑하는 선우에게는 운다고 했더니, 고작 그런 일로 울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선우는 우는 나 또한 사랑한다고 했다. 나는 울지만, 오른손은 모르게.
#오른손은모르게 #이장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