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시필사
내게 무엇을 받을 것인가 바라지 말고, 무엇을 줄 것인가에 대해, 공격과 수비에 대해, 낮과 밤에 대해, 파리와 나비에 대해 생각해봐,
사각형의 세계는 늘, 받은 만큼 돌려준다, 독재자의 눈빛을 번득인다, 속임수를 쓴다, 모든 지나감을 아까워한다, 쉽게 탄식한다, 공을 주우러 가는 사내들, 화가 난 양이 된다, 성질 급한 교도관이 된다, 무릎을 굽히며 생각한다,
주고받음의 문제에 대해, 작은 공에서 일어나는 회전에 대해, 사이좋게 나눠 갖는 서브의 권리에 대해, 종교인처럼 말이 많다,
저 너머의 세계로 당신의 공을 떨어뜨릴 수 있겠는지 생각해 봐, 네트마다 그려진 빨간 해골과 친절한 아침밥에 대해, 협박과 편지에 대해, 망루와 난망에 대해, 녹색의 세계는 반드시
「탁구공」, 서효인, 『백년 동안의 세계대전』
회사에서 탁구시합이 열려 점심 시간에는 예선전을 구경했다.
공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다보면 마치 시계 추가 된 거 같다. 똑딱똑딱. 테이블 위로 떨어지는 작은 탁구공이 내는 소리는 목탁소리 같기도 해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물론 선수들이 허리 오른쪽에서 왼쪽 눈높이까지 라켓을 휘두르는 동안, 탁구공은 규칙적인 소리와 달리 단 한번을 똑같은 선으로 날아가지 않는다. 둥글게, 사선으로, 때로는 위에서 뚝.
선수들의 습관을 보는 것도 재밌다. 항상 앞발을 탁 내밀며 서브를 보내는 사람, 공을 손으로 쥔 채 훗! 하며 숨을 불어 넣는 사람, 서브 전 라켓을 손목으로 돌리는 사람도 있다. 탁구대 주변을 커텐처럼 둘러싼 팬들을 향해 실수할 때마다 귀척 하는 사람, 실수를 하든 말든 의연한 사람. 내가 선수라면 날아간 탁구공을 쉽게 주울 수 없을 때가 가장 쑥스러울 거 같다.
탁구가 좋았던 건, 공을 정면으로 맞이한다는 점이다. 야구처럼 옆으로 서지도 않고, 골프처럼 공을 멈추게 한 뒤 치지도 않는다. 작고 가벼운 공을 사각의 탁구대 위에서 수시로 받아 쳐대는 선수들의 모습은 매일 출근 하는 회사원들처럼 보였다. 탁구는 속도도 빠르다. 춤으로 치자면 스윙. 가볍고, 점프했다가 쪼그렸다가 하면서도 박자를 잃지 않는다.
내일 아침 출근 길에는 주먹을 단단히 쥐고, 나도 훗!하고 숨을 불어 넣겠다. 마을버스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로 뛰겠다. 아, 나는 선수가 아니라 탁구공인가!
#탁구공 #서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