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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주 Dec 01. 2018

의자는 생각한다

30일 시필사

의자는 생각하는 사람처럼 앉아 있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수평선이 그려진 그림을 바라보며


구름이 왼쪽 귀로 들어와 오른쪽 귀로 빠져나간다


다정한 연인처럼

창에 비친 서로를 바라보며 낡아가고 있다.


삶의 절반 동안 기억해야 할 일들을 만들고

나머지 절반 동안은 그 기억을 허무는 데 바쳐진다


아무도 모르고 지나친 생일을 뒤늦게 깨닫고는 다음해의 달력을 뒤적거린다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툭 치고

이제 문 닫을 시간입니다, 라고 말해주기만 기다리고 있다


금방이라도 무릎을 짚고 일어설 것처럼

의자 위에 물음표 하나가 앉아 있다


구름의 초대장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의자는 생각한다, 신철규, 우리의 죄는 야옹




회사 워크샵에 가서 밤새 술을 마시다 동료 여럿이 테라스로 나온 적이 있다. 테라스 의자에 앉아서, 엑소 노래를 부르며, 의자에 앉아서 우리는 몸을 흔들었다. 깔깔거리며 미친 듯이 웃었다. 밤에 하는 일들이란 게 아침이 오면 무색해지듯, 아침에 일어나 다시 테라스에 나갔더니 의자 셋이 덩그러니 있었다. 술이 덜 깬 탓인지, 의자 셋은 팔걸이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경의 바다를 내려다 보며, 우리가 어제는 미쳤었다면 이들은 지적으로 보였다. 의자들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일까.


#의자는생각한다 #신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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