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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주 Nov 07. 2018

슬픈 환생

30일 시필사

몽골에서는 기르던 개가 죽으면 꼬리를 자르고 묻어준단다

다음 생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사람으로 태어난 나는 궁금하다

내 꼬리를 잘라 준 주인은 어떤 기도와 함께 나를 묻었을까

가만히 꼬리뼈를 만져본다

나는 꼬리를 잃고 사람의 무엇을 얻었나

거짓말 할 때의 표정 같은 거

개보다 훨씬 길게 슬픔과 싸워야 할 시간 같은 거

개였을 때 나는 이것을 원했을까

사람이 된 나는 궁금하다

지평선 아래로 지는 붉은 태양과

그 자리에 떠오르는 은하수

양떼를 몰고 초원을 달리던 바람의 속도를 잊고

또 고비사막의 외로운 밤을 잊고

그 밤보다 더 외로운 인생을 정말 바랐을까

꼬리가 있던 흔적을 더듬으며

모래 언덕에 뒹굴고 있을 나의 꼬리를 생각한다

꼬리를 자른 주인의 슬픈 축복으로

나는 적어도 허무를 얻었으나

내 개의 꼬리는 어떡할까 생각한다



<슬픈 환생>, 이운진, 『시와 환상』2012년 겨울호.


늘 사람에게 꼬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음과 별개로 움직이는 입이나 내 마음도 정확히 모르는 머리보다는, 그저 마음가는대로 연결되는 꼬리가 있다면 관계가 얼마나 간편했을까.

그런데 이 시는 그 '꼬리' 때문에 너무 처연하다.


#슬픈환생 #이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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