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읽은 것들
카카오 소셜임팩트사업 리드, 카카오임팩트 매니저로 일하면서 읽는 것들을 격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울러 일하며 생기는 에피소드도 전할게요. _Juni
“대표님, 소개 타이틀을 ‘여성의 일상이 안전해지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어떤 상식을 만들어야 할까요?’라고 했는데 어떠세요?”
“타이틀을 ‘여성이 안전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어떤 상식을 만들어야 할까요?’라고 변경해주실 수 있을까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 1기에 선정된 리셋 최서희 대표와 나눴던 대화다. 피드백을 받고 펠로우 소개 타이틀을 수정하면서 부끄러웠다. ‘안전'은 모두의 권리이고, 이것이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라면 그 권리를 되찾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여성인 나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우리는 펠로우들에게 축하 장미를 전달하는 데 그쳤다. 준비할 시간이 너무 짧았으니까, (내심 위로하면서) 내년에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들과 재미있는 일을 기획해보자고 서로서로 다짐했다. 일단 여성의 날 관련하여 안 좋은 기사는 좀 거르고 즐거운 것들만 소개해보기로 한다.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에서 여성의 날을 기념해 <폭력에 대항하는 여성들: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캠페인을 오픈했다. 주말이 피곤했는지,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가 ‘피로는 멈추지 않는다’로 읽히긴 했다. 여성 활동가들의 칼럼과 아티스트들의 기고문이 내 마음에서 파도친다.
나는 불꽃이다
붉게 타올라 그 빛으로 앞을 밝힌다
_슬릭
구글의 두들은 여성의 날에도 빛났다. 여성이 처음으로 해온 그 길들이 너무나 잘 보여서 아침부터 뭉클했다. 도전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세계의 역사에서 수많은 여성이 최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네이버의 로고는 2020년에도 수많은 원성을 들었으면서 올해도 스킵했다. (다음할많하않)
구글의 스토리 하단에 실린 아티클이다. 인터넷은 표현과 기회를 찾는 여성에게 중요한 공간이지만, 거의 모든 형태의 디지털 폭력이 미치는 공간이기도 하다는 내용.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 상황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눈에 띄게 더 나빠졌다고 한다. (가정폭력, 온라인 폭력 그 모든 것에서 지표는 더 악화되었다.)
온라인에서 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은 자기 검열에 빠지며, 특히 여성 언론인의 경우 3명 중 1명이 온라인 폭력으로 퇴직을 고려한다고. 그런데, 정말 기술이 온라인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예방할 수 있을까? 글쎄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세일즈포스 창업자인 마크 베니오프가 쓴 <트레일 블레이저(Trail Blazer)>에는 141페이지~166페이지에 걸쳐 꽤 길게 양성 평등 이야기를 다룬다. 회사 내 남녀 임금 격차가 존재하고, (리더십 또한 불평등) 이를 해결하기 위해 Woman’s Surge라는 이니셔티브를 시작하고, 결과적으로 ‘평등'을 만들어냈다는 꿈같은 이야기다.
저와 똑같은 지위의 남자들이
고가의 테슬라 자동차를 사고 있어요.
_144p
여성 임원의 이 말을 시작으로 마크는 1만 7천 명의 모든 영업사원의 급여 검토를 해 동등한 급여를 맞추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것을 조정하기 위해 300만 달러를 추가 지급했지만 1년 후 다시 조정이 필요했다. 인수한 기업들의 임금 관행에 이미 인종, 민족,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임금 문제가 어느 정도 매듭지어진 후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고객을 위한 금융영업팀의 발표 자리에 참석한 영업사원이 모두 남자임을 안 마크는 “왜 여성 영업사원은 없나요?”라는 쪽지를 내민다. 이후 그 팀의 여성 비율은 37%로 증가했다.
내가 이 부분에서 가장 좋았던 문장은 두 가지이다.
“우리는 새로운 네트워크에 연결되었고, 여성들은 세일즈포스에 오고 싶어 합니다.”_153p
“당신은 남자들은 안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왜 여자는 안은 거죠? 당신의 그 행동이 그녀의 권위를 떨어뜨렸어요. 그들은 다 같은 전문가들이라고요.”_154p
COVID-19 상황에서 여성들에게 폭력만 늘어난 게 아니다. 더 많이 노동하고 더 많이 육아에 내몰리고 있다. 그런데도 가부장제에 따라 남성에게 더 많은 기회와 돈이 돌아간다. 어쨌든 여성이 리더가 되지 않는 이상, 이런 상황은 트레일 블레이저처럼 회사가 알아 채기도 어렵다. 주말 클럽하우스에서 <어떻게 하면 여성 창업자를 늘릴 수 있을까요?>라는 방에서는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투자 심사를 받으러 가면, 여전히 남성 심사위원 비율이 압도적이에요. 지방에는 전체가 넥타이를 맨 50대 남성인 경우도 있어요. 당연히 정장을 입은 남성 창업자에게 많은 기회가 가요. 여성 창업자를 늘리려면, 일단 여성 심사역부터 제도적으로 비율을 늘려야 합니다."
넷플릭스가 최근 발표한 Inclusion 보고서조차도 여성이 영화나 시리즈의 감독, 작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할 경우에는 여성 주연과 공동 주연, 대사가 있는 여성 등장인물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넷플릭스는 이것을 '포용'이라고 말한다. (이제야 조금 동등해지려는 순간임에도...)
조금 우울한 기사를 보았지만,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은 넷플릭스의 메시지처럼 (한국의 IT 기업들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갈 때 더 많은 여성의 역사가 그 뒤를 따를 것이라고 본다. First but not the l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