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모르게 서로에게 건네는 어떤 것들
누구나 일에 어느 정도의 소명 의식이 있겠지만, 소셜 임팩트 조직에서 일한다는 것은 소명 의식이 당연하게 생기는 구조라고나 할까. 소셜 섹터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 먼저 감동해버리는 게 다반사. 그래서 좋은 일, 아름다운 일, 필요한 이 일들을 멋지게 완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간 만났던 사람들도 언젠가 그룹 지어 소개할 날이 있겠지만, 일단 지난 2주 동안 나에게 스파크와 에너지를 준 사람들. 그리고 보고 읽은 것들.
01. 어떤 말
지난 수요일, 목요일에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들과 사무국 간의 가벼운 식사 자리가 있었다. 코로나 상황이고 다들 바쁜지라 여러 타임으로 쪼개서 개별로 만나, 사는 이야기 도란도란. 이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정정윤 펠로우(핸드스피크 대표)의 멘트.
“펠로우 선정과 발표 즈음이 둘째 출산을 앞둔 시기였어요. 아무래도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는데, 펠로우십 선정 후에 에너지를 많이 받았어요. 둘째 출산하고 일주일도 안돼서 미팅도 하고 그랬는데, 저희 아티스트들이 이런 말을 해요.
대표님 보면 결혼해도 되겠다, 출산해도 되겠다고요. 일 계속하고 있으니까. 비단 여성 활동가들에게도 저의 이런 활동이 영감을 주면 좋겠어요.”
02. 어떤 비즈니스
지난 금요일에는 소풍벤처스 투자조합 총회가 열려 참여했다. 2부에 소풍벤처스가 투자 중인 파트너들의 소개가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관심 있었던 기업은 두 곳이다.
한 곳은 ‘라이프샐러드’라는 시니어 만성 질환자 식사대용식-케어푸드를 제공하는 회사. 스타트업, 소셜벤처의 기업 문화 특성상 대표라고 해도 티셔츠나 스웻셔츠, 기껏해야 노타이셔츠가 많은데, 그 가운데 라이프샐러드 대표님만이 타이까지 맨 완벽한 양복 슈트 차림이었다. 거기에 은색 헤어까지 한몫하셔서 잠시 영화 <인턴>을 떠올리기도 했다.
제품 패키징 디자인이 꽤 모던했는데, 나이 든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자녀들이 원격 효도의 일환으로 구매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 곳은 에이임팩트. 적정 AI 기술을 이용해 송장-주문 정보를 맞춤으로 해주는 회사다. 요새는 작은 농장이나 농부, 어부가 직접 카카오톡 채널이나 네이버 밴드 등을 만들어 주문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문제는 주문자들이 보내는 주소나 주문 내용의 형식이 제각각이라는 것.
고령화되는 농어촌 사회에서 플랫폼을 이용해 유통에 도전하는 분들조차도 메시지로 받은 주문 정보를 일일이 송장 입력하는 것은 고비용의 일. 에이임팩트는 이렇게 사용자가 보낸 메시지를 패턴 분석해 자동으로 송장과 주문을 완성해주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단번에 너무 멋지고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의 작은 니즈를 발견하고, 이것을 기회로 작은 기업들이 탄생한다. 그중에는 난이도가 낮은 기술도, 독보적인 기술도 있다. 문제는 타겟 시장의 규모가 커질 때다. 기술 난이도가 낮은 기업은 언제든 더 압도적인 자본과 기술을 가진 기업에 잠식당할 수 있으니까.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즈니스와 조직을 성숙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다양한 투자와 지원을 받는 동안 부디 멋진 기업들로 살아남기를.
03. 어떤 소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페스트를 피해 모여든 남녀 10명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내용으로 하는 단편소설집이다. COVID19 버전의 데카메론이 나올 예정. 팬더믹으로 인해 뉴욕의 “부자들이 도시를 떠날 때” 남은 작가들이 건물 옥상에서 모여 나눈 이야기로 설정한 공동소설집이 출간 예정이라고.
존 그리샴을 비롯한 다양한 작가들이 참여하고 마가렛 애트우드가 편집을 맡았다. 각 이야기들을 누가 썼는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익명으로 유지할 계획이며, 이 책의 출간 수익은 모두 미국의 작가들을 지원하는 Authors Guild Foundation에 전달된다. 팬더믹으로 저자들은 이전 소득의 평균 49%가 줄었다고.
04. 어떤 아트워크
최근 늘어난 아시안 대상 혐오범죄 예방을 위해 뉴욕시 인권위원회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아시안이자 뉴욕시 인권위원회의 레지던시 아티스트이기도 한 아만다가 제작한 포스터들. 알록달록하면서 메시지도 선명하다.
05. 어떤 기부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백인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던 이 할머니를 위해 사람들이 고펀드미에서 펀딩을 했는데, 거의 백만 불이 모아짐. 그런데 할머니는 이 돈을 아시아인들에 대한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써달라고 전액 기부한다는 기사.
06. 어떤 작품
어떤 모임이나 공간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않고 자리를 뜨는 것을 ‘프렌치 엑시트(French Exit)’라고 한다. Tadao Cern은 마른 갈대와 풀을 천정에 붙인 작품에 프렌치 엑시트라는 제목을 붙였다. 작가는 중력의 반대편에 자연을 배치해 인간과 자연의 서로 다른 길을 보여주지만, 관람객은 흙과 풀을 움켜쥐며 살아야겠다는 메시지를 받는다.
우리는 지구를 떠날 때 누군가에게 안녕이라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