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하고, 실수하고, 틀리고, 다 망칠 것 같아
꿈에서 나는 고등학교로 돌아가 시험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OMR 카드에 인적사항을 채워 넣다가 계속 실수를 했다. 과목을 써야 하는데 이름을 쓰고, 이름을 써야 하는데 과목을 쓰고, 엉뚱한 글씨를 쓰기를 반복했다. 손을 들어 카드를 몇 번이고 교체해 가며 계속 실수를 했다. 카드를 바꿔주던 교사는 내가 장난친다고 생각한 건지 엄한 얼굴로 옆에 와서 내가 하는 꼴을 지켜봤다.
나는 그때 겨우 인적사항 기입을 마치고(끝끝내 못 채운 빈칸들이 듬성듬성 나 있는 상태였다) 문제지에 손을 대고 있었다. 1번 문제부터 차근차근 시작할 엄두도 못 내고 중간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문제지에 코를 박고 들여다보아도 글씨가 머릿속에 부드럽게 들어가지 않았고 억지로 한 글자 한 자 집어 머리에 처넣었다. a b, d f, a c, e,... 안간힘을 써 봐도 집중이 안 되고 글씨가 안 읽혔다.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겨우겨우 한 문제를 풀어냈는데 다음 문제로 넘어갈 정신이 없어서 힘겹게 검토를 했다. 그랬더니 또 다른 게 답인 것 같았다. 그래서 체크를 바꾸었다. 바꾼 게 정답이었는지 옆에 버티고 서서 모든 걸 보고 있던 교사가 픽 웃었다. 그러고는 내가 장난질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지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걸 확인해서인가, 호의적인 말투로 10분 남았는데 나머지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네", 대답했다. 뭐가 "네"지? 문제가 몇십 개 남았는데 시간은 고작 십 분 남아있었다(시계의 숫자를 읽는 것도 잘 안 돼서 그것도 거듭 확인을 했다). 당황스러웠다. 난 항상 국어를 잘했는데. 이번엔 말도 안 되는 점수가 나오겠구나. 그 와중에 또 OMR 카드 마킹을 틀렸다. 내가 그 교실에 있던 여분 카드를 다 써버려서 다른 반에서 누가 갖다 줬다.
꿈에서는 시험 중에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나는 이 황당한 사건에 대해 주변 애들에게 해명인지 하소연인지를 했다. 어젯밤에 이상하게 잠이 안 왔는데, 그래서인지... 요즘 밥도 잘... 어제는 또 커피를... 문제를 읽는데 집중이 하나도 안 돼서.... 시험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내신은 조졌으니 정시로 완전 전환해야 하나. 어라, 근데 난 이미 졸업도 했고 대학도 갔는데.......
해석조차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명백하고 쉬운 꿈이었습니다. 짐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다룰 주제는 '시험불안'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 중에서는 겪어 보지 않은 이가 더 드물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에도 중요한 시험들이 있지만 한국은 대학진학률과 교육열이 유독 높고 학업 성취에 대해 기대되는 바가 크다 보니 공부나 시험과 관련하여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는 가히 압도적입니다.
저는 뭐든 적당히 하고 남는 시간 동안 빈둥대려는 천성을 타고난지라 입시 경쟁에도 남들만큼 치열하게 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시험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시험을 치를 때마다 잘 못 볼까 봐 겁이 났고 특히 가지고 있는 원래의 실력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말도 안 되게 낮은 점수를 받으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 큰 두려움이었습니다. 그것은 이 꿈에 적나라하게 반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한참 전에 현실화되어 수능을 시원하게 말아먹은 전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시험불안은 말 그대로 중요한 시험에 대하여 시험 도중이나 시험을 치르기 전, 또는 치르고 난 후에 느끼는 불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학계에서는 이것이 크게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분석합니다. 하나는 걱정(worry)으로, 기대, 두려움, 자신감 부족 등을 아우르는 시험 관련 부정적 인지 요소들입니다. '이번엔 꼭 95점 이상 맞고 싶은데', '난 다른 애들에 비해 머리가 나쁜 것 같아', '시험 망치면 부모님이 실망하겠지?' 같은 것들이지요.
다른 하나는 감정(emotion)입니다. 시험을 볼 때 아찔해지고 두렵고 초조하고 가슴이 쿵쿵 뛰고 식은땀이 나고 소화가 잘 안 되고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모든 정서적, 신체적 반응들을 포함합니다. 이 감정 요소를 보면 시험불안이 우리로 하여금 실제로 시험을 망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가 꿈에서 OMR 카드에 자꾸 오류를 내고 문제지의 글씨를 읽을 수 없었던 일은 시험에 대한 불안과 긴장이 과중하다면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불상사를 겪지 않으려면 평소에 시험불안을 잘 다스리고 감소시켜야 하겠지요. 연구에서 시험불안과 관련이 있다고 지목된 요인들로는 낮은 자존감, 완벽주의 성향, 기질적인(성격특성으로서의) 불안, 부모의 부적절한 양육 또는 성취압력, 부정적 평가의 두려움, 시험을 어렵다고 인식하는 것, 부정적 학업적 자아 개념 등이 있습니다. 대부분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고 개인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입니다. 그러니 과도한 시험불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찍이 이런 요소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특히 부모의 지지적이고 올바른 양육이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이미 시험불안이 발생해 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 방법으로는 시험불안을 줄여줄 수 있는 요인들을 육성하는 것이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자기효능감, 자기통제력, 자기자비, 실패내성, 자아탄력성, 불안 조절 같은 요인이 시험불안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학생은 시험을 위해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살면서 틈틈이 스스로가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행동과 삶을 잘 통제하고, 설령 실수를 하더라도 자신을 너그러이 용서하고 금방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연습은 혼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은 아닙니다. 다행히 시험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한 다양한 치료 프로그램도 나와있습니다. 시험불안을 포함한 불안과 관련하여 가장 각광받고 효과가 잘 입증된 치료 중 하나는 '인지행동치료'입니다. 인지행동치료는 부적절하고 역기능적인 인지와 행동에 체계적으로 개입하는 치료로,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비교적 짧은 기간과 적은 회기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심한 불안을 경험하고 있다면 이러한 전문적 치료도 시도해 볼 만합니다.
성장기는 시험으로 가득합니다. 정말 하나하나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그 대단한 수능조차 시간이 흐르고 나면 존재감이 미미해지지 않나요. 기가 막히게 잘 봤든 대차게 말아먹었든 언젠가는 술자리 안주로도 잘 꺼내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비슷비슷한 학창 시절을 보내온 우리들에게 수능을 비롯한 시험들은 결코 언젠가 가벼워질 것 같은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너희의 본분은 학업이며 좋은 대학만이 너희 삶을 구원할 것이라는 교육을 받다 보면 마치 내가 숫자와 글자로 구성되어 있고 성적이 나를 다 설명하는 것만 같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시험불안은 실재하는 고통입니다. 누군가는 오늘도 시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잠을 설치고 가슴이 죄어오고 손가락이 떨리고 집중이 잘 되지 않는 경험을 할 것입니다. 과도한 불안은 치료의 대상이고 고통과 부정적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경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개인 차원에서 불안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했습니다. 이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친 군인을 치료해 전쟁터로 돌려보내듯, 코너에 몰린 학생들을 달래어 불안을 끊임없이 양산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 속으로 돌려보내는 씁쓸함은 감출 수 없습니다. 시험은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고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합리적이며 차갑고 고통스러운 수단이지요. 누군가의 말처럼 '필요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에는 교실혁명을 꿈꾸었던 것도 같은데, 결국 저도 떨지 말고 잘하고 오라는 말밖엔 할 수 없는 어른이 되고 말았군요.
참고 문헌
방기연, 이혜진, & 신인수. (2023). 인지행동치료 집단상담의 청소년 시험불안 감소 효과에 대한 메타분석. 청소년학연구, 30(9), 381-410.
전선영, & 조한익. (2022). 대학생의 자아탄력성, 실패내성, 자기자비, 시험불안과의 관계: 자기자비와 실패내성의 조절된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청소년학연구, 29(10), 87-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