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에가는길 Aug 08. 2024

형제와 경쟁하는 꿈

내가 제일 잘난 자식이 되고 말 거야

 
 큰집에 가는 꿈을 꿨다. 원래는 다른 곳에 가고 있었는데 아빠가 큰집에 들렀다 갈래? 하고 물어서 가게 됐다. 나랑 오빠는 둘 다 안 가겠다고 했는데 아빠가 할머니 얘기를 꺼내서 그냥 그러자고 했다. 가서 할머니를 부르자 큰집 식구들이 다 나왔다. 할머니는 내 기억보다 너무나 정정하셨으며 사촌언니는 여전했다.

 꿈속에서의 나는 많이 자란 느낌이라 친척 어른들을 아주 친숙하고 능청맞게 대했다. 현실에서는 늘 어렵고 거북한 일이었지만 꿈속의 나는 편안하고 자신 있었다. 내가 말을 잘하자 오히려 오빠의 말수가 적어졌다. 이것 역시 현실과 사뭇 달랐다. 원래는 오빠가 어른들 사이에서 유창하게 대화를 하고 나는 한 발짝 빠져 조용히 있곤 했으니까.

 나는 특히 사촌언니한테 살갑게 대했고 언니와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됐다. 언니가 나보고 꿈에 네가 나왔다고 했는데 마침 나도 전날 언니가 나오는 꿈을 꿨었기에 나도 그렇다고 했다. 자기가 어떤 모습으로 나왔었냐기에 잘 기억나지 않는 꿈속의 꿈을 그러모아 좋게 좋게 말해줬다. 그러니까 또 역시 너는 듣기 좋은 말만 한다며 좋아하더라.

 이때 엄마가 갑자기 봉투를 꺼내더니 사촌언니에게 건네며 우리 딸이 얼마나 기특한지 큰엄마 생신이 곧인데 언니들한테 보태주라며 십만 원을 주더라, 했다. 금시초문이었다. 엄마는 내게 눈길을 보내며 맞장구를 요구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지, 내가 정말 그랬었나?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사촌언니는 기뻐했고 분위기가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이와 관련된 제 이야기는 프롤로그에서도 간단히 다룬 바가 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사람들을 대하는 걸 어려워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았지만 유독 친척이나 부모님의 지인을 대하는 것만은 어려웠습니다. 반면 오빠는 몇 살 더 많은 맏이로서 싹싹하고 편안하게 그들을 대했습니다. 그런 모습은 제게 오빠를 유능해 보이게 만들었고 열등감과 질투심을 안겨주었지요.


 오빠를 '나보다 잘난 자식'이라고 생각하게 된 지점은 그것 말고도 여럿 있었습니다. 오빠는 저와 달리 기질적으로 예민하지 않았고 가족 내의 분위기에 잘 어울렸으며 저보다 성실했고 대학을 더 잘 갔고 저와 달리 일찍 취업을 했습니다. 그런 것을 다 떠나더라도 저보다 몇 살이 더 많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저는 결코 오빠를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오빠는 언제나 저보다 더 믿음직스럽고 기대받는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이 꿈은 어떤가요? 그 관계가 역전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꿈속의 저는 마치 오빠가 그랬던 것처럼 능숙하게 어른들을 대하고, 꿈속의 오빠는 마치 저처럼 기가 죽었습니다. 저는 심지어 엄마를 통해 사촌언니에게 봉투를 건네주는 기특한 행동까지 합니다. '잘 큰 자녀', 좀 더 정확하게는 '오빠보다 잘 큰 자녀'가 되고 싶었던 저의 소망과 결핍을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꿈입니다.




 형제간의 경쟁심이나 갈등, 열등감과 우월감은 거의 모든 형제자매 관계에서 일어나는 보편적 현상입니다. 이것을 '형제간 경쟁(sibling rivalry)'라고 부릅니다. 형제는 태생적으로 부모의 애정이나 관심을 포함하여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가정 내의 자원들을 나눠 가져야 하는 사이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이러한 자원들은 모두 한정적이며 늘 균등하게 분배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치열한 경쟁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많은 가정에서는 이러한 형제간 경쟁이 어린 시절에 적당히 매듭지어지거나 정상적인 수준에 그치지만 어떤 가정에서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지고 심각한 갈등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형제간 경쟁의 양상이나 강도는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지어집니다. 부모의 양육 태도, 형제 산의 성별이나 나이 차이, 아이들이 타고난 기질과 성향 같은 것들에 의해 피를 나눈 형제 사이의 관계는 아주 나쁜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차별적이거나 비교하는 양육을 해서는 안 되며 자녀들 모두가 자신이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맏이에게 동생의 탄생은 큰 충격이자 상실일 수 있으니 그것에 대해 미리 설명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형제들끼리 경쟁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믿고 기다린다면 아이들은 대부분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고 극복하며 성장해 갑니다.




 지금의 저에게 형제간 경쟁은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무엇 하나 그냥 잊어버리는 법이 없는 제 무의식이나 가끔 되새기지, 저의 의식은 오빠를 치열한 경쟁의 대상이 아닌 데면데면한 형제로 여깁니다. 자고로 인간 사회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아니겠습니까. 한정적인 자원을 놓고 싸워야 하는 대상이 집 밖에 널려 있는데 굳이 집안에서 싸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저희 가정도 형제간 경쟁이 자연스럽게 해소된 케이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모든 경쟁이 그러하듯 형제간의 그것에도 건강한 면이 있습니다. 저는 물론 오빠 역시 이러한 관계에 기반하여 성장해 왔을 것입니다. 더 나은 자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를 반면교사 삼거나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려고 하기도 했겠지요. 열등감이 원동력이 되어 더 열심히 달릴 수 있는 순간도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나이를 좀 더 먹고 나면 가족 배경을 공유하는 유일한 서로의 이해자이자 중요한 문제를 함께 다루어야 하는 동반자로서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가정에서는 형제간 경쟁이 현재진행형의 문제이자 좋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없는 정도의 심각한 문제로 작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개인이나 가정의 중대한 실패로 여길 필요까지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제는 오히려 경쟁하고 갈등하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도록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사람 사이에 당연한 관계란 없습니다. 형제간의 관계도 다른 모든 관계들처럼 인연과 노력을 통해 유지되고, 잘 안 풀릴 가능성도 언제나 열려 있는 것입니다.




이전 07화 내가 죽는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