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나는 꿈에서 외국 대학에 다니는 대학원생이었고 어떤 교수의 OT를 듣고 있었다. 학생들은 OT가 끝나면 교수의 연구실에 소속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나에게는 도덕과 법을 위반하는 기이한 취미가 있고 그것을 지금 솔직히 밝힐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학기 중 그와 관련된 행동을 할 것이다.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내 연구실을 선택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너희가 나를 고발하더라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공권력도 매수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 교수의 취미는 아주 역겹고 타인과 사회에 피해를 주며 상식선을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잠시 역겨워한 뒤 그냥 모른 체하기로 했고 그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갔다. 큰 양심의 가책은 느껴지지 않았다. 교수가 인간적으로 싫긴 했지만 내가 여기서 옳고 그름을 판단해 누굴 단죄할 이유나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도덕적으로 무결하지 않으니 그럴 자격이 없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다음 장면에서 나는 내 자취방에서 그 교수의 강의에 사용될 교재와 교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외국어로 쓰인 문장들이 많길래 놀러 온 친구들에게 그 뜻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 문장들은 그것이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일에 쓰이리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이었다. 결국 나는 내가 범죄를 저지르려는 게 아니라고 해명하기 위해 교수와 그의 취미, 그리고 내 선택에 대한 것을 친구들에게 털어놓게 되었다.
말하면서도 나는 꽤 떳떳했다. 대학원생으로서 연구실에 들어간다는 건 원래 이렇게 부당한 걸 참고 스트레스받아가며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듣고 있는 친구들 중 하나는 나보다 먼저 이곳에 자리를 잡은 대학원생이었다. 나는 아마 그 친구 때문에 더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적응 못하고 이방인으로서 도태되어 있는 시간이 더 이상 길어지지 않기를 원했다. 그러려면 교수들의 말에 잘 따라야 했고 연구실에 소속되어 성실하게 활동해야 했다.
꿈을 꾸고 나서 생각난 학자가 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한나 아렌트입니다. 그는 나치 독일 친위대의 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해 연구한 바 있습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휘하에서 유대인에 대한 학살과 침탈을 자행했던 주동자격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죄의식이나 후회를 느끼지 않았다고 하며, 재판정에서는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고 단지 공무원으로서 상급자의 지시를 성실히 이행했을 뿐이라고 발언하였습니다.
그의 심리와 행적을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악행은 광증이나 포악함, 도착 등의 악한 성정에서 비롯되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개인이 단순한 사고를 함으로써, 즉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고 스스로 고민하여 결정하는 깊은 사유 없이 피상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것이지요. 후에 아이히만은 결코 기계적 관료가 아니라 적극적인 학살자였으며 나치즘 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이 밝혀졌지만 그와 별개로 아렌트의 이론은 여전히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다른 한 명은 스탠리 밀그램입니다. 밀그램 실험(Milgram experiment), 또는 밀그램의 복종 실험이라고 불리는 연구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실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밀그램은 피실험자들을 두 명씩 짝지어 각각 교사와 학생의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학생이 문제를 맞히지 못할 때마다 교사가 전압을 점차 높여가며 전기 충격을 가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랬더니 학생(사실 연기자들이었으며 전기 충격은 가짜였습니다)이 고통을 호소하며 그만두라고 부탁했음에도 상당수의 피험자들이 생명에 위협이 되는 수준까지 전기 충격을 가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실험을 바탕으로 밀그램은 권위자의 설득력 있는 지시가 있다면 평범한 사람들도 쉽게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르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실험은 매우 비윤리적인 것이었고 절차가 엄밀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되었으나 맹종의 위험성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며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뒤 저는 제가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는지 의아했고 실망스러웠습니다. 꿈속에서 제가 한 일은 악행을 묵인하는 것을 넘어 동조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스스로가 대단한 인격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법과 도덕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꿈에서는 양심의 가책이 거의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교수가 별 문제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니 문제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는 것이 가장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일인 것처럼 생각되었지요.
꿈을 꾸기 전날 밤 저는 뉴스에서 어떤 집단적 범죄 사건을 접하고 불쾌해하다 잠에 들었고 그 영향으로 이러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에 반영된 저의 무의식적 소망이나 두려움은 무엇이었을까요. 선과 악, 불의와 정의의 경계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거나 손해를 감수하지 않고 그냥 누가 정해주는 대로 따르고 싶다는 마음이었을까요? 혹은 일상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악행을 저지르게 될까 봐 두려워져 꿈으로써 경고하려 한 것일까요?
인간이 태생적으로 선한가 악한가 하는 것은 여러 학문 영역에서 논의되어 온 주제지만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악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조건 없이 선행과 악행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민 없이 선행을 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평범하게 선한 사람들에게조차 권위나 체제에 반하여 악행을 능동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선하게 태어났든 악하게 태어났든 저는 가급적 선하게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선은 쉽게 저절로 손안에 떨어지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니 악의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존엄하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고민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은 우리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입니다. '그냥 따랐을 뿐'이라는 말이 언제나 악행에 대한 변명이 되어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