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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에가는길 Aug 29. 2024

해외에 나가서 고생하는 꿈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꿈에서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러시아에 가게 됐다. 가자마자 일을 하나 맡았다. 그날 밤 열리는 큰 경매에서 한 재벌이 이익을 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매에 참여해 낙찰가를 끌어올리는 등 훼방을 놓아야 했다. 할 만할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쉽지 않았다. 고가품이 거래되는 경매라 아주 큰 단위의 숫자들을 러시아어로 읽어야 했던 것이다. 내게 그 일을 맡긴 현지인에게 너무 어려운 것 같다고 말해보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신이 한국어로 이만한 수를 읽는다고 생각해 보라고 항변했으나 자기는 어렸을 때 안산에 살았어서 잘 읽는다고 했다.

 다음 장면에서 나는 버스를 타고 모스크바로 이동하고 있었다. 사방이 낯선 풍경이었다. 버스가 나를 내려준 곳은 황량한 공터였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높은 턱을 넘어가야 했는데 다들 쉽게도 넘어가는 걸 나만 한참 못 넘어가고 낑낑댔다. 몸에 힘이 잘 안 들어가서 매달렸다가 떨어지다가 하며 안간힘을 쓰다 세 번만에 겨우 올라갔다. 스스로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넘어간 뒤엔 길을 찾기 위해 지도를 사기로 했다. 그런데 지갑에는 뭐가 얼만지도 알 수 없는 러시아 동전들이 들어있었다. 액수를 헤아려 지불하는 게 어려워서 쩔쩔맸다. 여기서 잘 지낼 수 있을까, 불안감이 엄습했다.
 


 러시아에 가서 살아볼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러시아가 아닌 어느 나라라도 저는 단기 여행을 넘어 오래 머물고 싶지는 않습니다. 유학을 비롯한 해외살이의 경험이 있거나 앞으로 경험할 예정이라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전 속으로 '난 절대 못 해' 하고 되뇝니다. 다른 나라에 발 붙이고 사는 상상을 하기만 해도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이방인의 막막함이 느껴지거든요.


 이 꿈은 그러한 저의 두려움으로 인해 만들어졌습니다. 러시아는 낯설고 이질적이며 새로운 환경을 상징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낯선 곳에 뚝 떨어져 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일도 하고 혼자 길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꿈속의 저는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어려운 일에서 고전할 뿐만 아니라 별로 어렵지 않은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스스로가 바보같이 느껴집니다. 이렇듯 낯선 환경은 사람을 작고 약하게 만들곤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입학이나 전학, 입사나 이직, 이민 등 새로운 환경에 발을 내딛는 일은 설레는 일인 동시에 어렵고 두려운 일입니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첫날을 앞두고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잠을 설친 경험이 아마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익숙한 무언가를 떠나 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고통입니다. 이리도 변화로 가득한 삶 속에서 적응이란 평생 풀어야 하는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심리학에서 활발히 연구되는 개념이기도 한 '적응'은 쉽게 말하면 주어진 환경에 맞춰 잘 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걸음마를 배우고 처음 집 밖을 나서던 순간부터 무수히 많은 적응을 하며 상당히 단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낯선 환경에 처음 당도했을 사람들은 대개 걱정했던 것보다 해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응 초기에는 꿈속에서의 저처럼 스트레스를 받거나 자괴감, 수치심 부정적 감정을 경험하는 일이 흔합니다. 


 이런 고난이 금방 지나간다면 다행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적응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오래도록 헤맨 뒤에도 끝내 적응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 그 결과는 해당 환경을 떠나는 것이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는 것이겠지요. 만약 내가 지금 맞닥뜨린 환경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러한 적응 곤란을 방지하기 위해 평소보다 좀 더 적극적인 수를 써야 할 것입니다. 다른 국가로 유학을 간 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이 가지 효과적인 방안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는 해당 기관이나 도시 등에 마련된 행정 서비스 및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국내 5개 대학에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을 표본으로 한 연구에서는 적응과 관련된 여러 요인 중 각 대학의 지원 및 적응 프로그램 요인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이것이 학생들의 문화적응과 대학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적응이 어려울 때는 먼저 내가 속한 환경이 이러한 지원을 제공하는지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활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는 해당 환경의 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외국인 유학생의 적응을 다룬 여러 연구에서 문화에 대한 적응과 학업 및 대학생활 적응은 서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구체적으로, 유학 중인 국가의 문화에 대한 의식이 높고 적응력이 높을수록 학업과 대학생활에 대한 적응도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부하러 갔다고 해서 공부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내가 속한 환경에 관심을 갖고 융화될수록 전반적인 생활은 물론 수행까지도 고취될 수 있을 것입니다.




 환경과 인간은 늘 상호작용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환경에 도착했을 때 우리와 환경은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존재입니다. 낯선 두 존재가 만나 잘 지내려면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자신을 일부 변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환경이 먼저 손을 내밀어 줍니다. 앞서 말한 행정 서비스나 지원 프로그램 등이 그것입니다. 적응은 인류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많은 국가나 기관에서는 이를 위한 지지 체계를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먼저 손을 내미는 방법도 있습니다. 저에게 러시아는 숫자도 읽을 수 없고 동전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만큼 낯선 나라지만 저는 러시아의 전통 꿀 케이크인 메도빅을 좋아합니다. 만약 러시아에서 헤매느라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굴뚝같을 때 맛있는 메도빅 가게를 발견한다면 좀 더 버틸 수도 있을 겁니다. 먹다 보면 러시아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이런 맛있는 것을 만들게 되었을까 궁금해질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러시아라는 나라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말했듯 저는 유학이나 이민 생각이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것은 생각만 해도 막막합니다. 그러나 몇 년 뒤엔 제가 외국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 삶의 여러 변화는 늘 우리가 원해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우리는 때로 전혀 원치 않았던 환경에도 던져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매일매일 떠날 궁리만 하며 하루를 다 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떠날 땐 떠나더라도, 머무는 동안 적응하려는 시도를 해보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김현진. (2017, December). 재한 외국인 유학생의 문화적응 수준별 문화적응 요인 및 문화적응 전략 비교 연구. Bilingual Research. The Korean Society of Bilingualism. https://doi.org/10.17296/korbil.2017..69.51
Jang, K.-O. (2018). Convergence Research on Academic Adjustment of Foreign Students. Journal of the Korea Convergence Society, 9(11), 169–177. https://doi.org/10.15207/JKCS.2018.9.11.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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