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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에가는길 Jul 18. 2024

초등학생 때로 돌아가는 꿈

어린 시절의 괴로움을 씻어내고 싶어


 아주 상쾌하고 즐거운 꿈을 꿨다. 꿈 속에서 내 나이는 초등학생보단 훨씬 많았지만 나는 왠지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꿈에 등장한 인물들도 초등 동창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동창들도 모두 초등학생처럼 활기차고 놀기 좋아하고 단순했다.

 실제로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철없는 남자애들이 시비를 걸어대서 짜증 났던 적이 많았는데 꿈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동창 남자애 하나는 현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는 척 잘난 척을 있는 대로 했는데, 특히 조상과 혈통을 들먹이며 "너희 조상은 천한 사람들이었다"고 나와 다른 여자애를 끈질기게 놀렸다.
 현실에서는 그런 녀석들 때문에 고생을 좀 했었지만 꿈 속의 나는 그들을 손쉽게 다룰 수 있었다. 나는 그러는 네 조상은 뭐 하던 사람들이었냐고, 왕족이라도 됐냐고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남자애는 찔끔하며 노비였다고 답했다. 난 우리 조상들도 다 한 동네 살던 사람들 아니냐고(꿈 속이라 논리가 빈약하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서로 헐뜯으면 되겠냐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 뒤 거기 있던 애들 손을 다 모아 파이팅을 한번 외쳤다. 다들 기분이 좋아졌고 더 이상 서로 놀리거나 괴롭히지 않았다. 그러자 내 유년 시절에서 괴로움은 다 사라지고 해맑은 즐거움만이 남았다. 친구들이 내 신발을 벗겨 들고 도망치는 바람에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잡으러 다녔던 것이 기억난다. 내내 동창들과 손을 잡고 뛰고 장난치면서 무지 재미있게 놀았다.


  초등학생들의 삶이 그렇게 녹록지만은 않다는 것을 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제 유년기 학교 생활에서 스트레스가 되었던 부분 중 하나는 남자애들의 장난과 괴롭힘이었습니다. 지금에야 괴롭힘의 세부적인 내용은 물론이고 그 남자애들의 이름이나 얼굴조차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별 것 아닌 일들이 되었지만, 제 무의식은 여전히 그것을 유년기의 불만족스러운 경험 중 하나로 간직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리는 꿈을 통해서 유년기의 불만족을 보상하고 소망을 충족하려 한다고 이전에 이야기했습니다. 이 꿈은 좋은 예시입니다. 저는 초등학생 때의 괴로움인 '남자애들에게 괴롭힘 당하던 일'을 꿈을 통해 보상하려 했습니다. 그 시절 남자애들이 시비 걸고 놀릴 때에는 뭘 어떻게 해도 속 시원히 해결되는 것 같지 않아 답답했지만 꿈 속의 저는 그런 괴롭힘에 상처받거나 주눅 들지 않고 시원하게 맞받아쳐서 상황을 종결시켜 버렸습니다.

 

 그러자 속이 아주 후련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다 커서 이런 일쯤 쉽게 해결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에 몹시 든든하고 뿌듯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나자 아무런 괴로움도 걱정도 없이 친구들과 웃고 뛰놀며 유년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놀랍지 않나요? 까마득한 과거의 불만족과 결핍을 제 무의식이 잊지 않은 채 기회를 엿보다가 한참 시간이 흐른 뒤의 꿈에서 마침내 보상해 낸 것입니다.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끈기입니다.

 



 장난 같은 이야기지만, 실은 우리 마음의 메커니즘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유년 시절의 결핍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도 그것을 간접적으로 보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살면서 종종 자기도 모르게 과거의 결핍을 채우려 하곤 합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거나 어떠한 제약에서 벗어나고 나면 이런 일을 흔히 벌입니다. 가령 어렸을 적 부모님이 조금씩밖에 못 먹게 했던 간식을 한 번에 왕창 먹거나,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가질 수 없었던 고가의 브랜드 운동화를 돈을 벌기 시작한 후 마구 사 모으는 일 등입니다. 이것은 모두 유년기 경험을 보상하기 위해 우리의 무의식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룻밤 꿈을 꾸거나 첫 알바비를 탕진하는 정도로 비교적 간단하게 채울 수 있는 결핍들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우리 마음에 깊고 거대한 구멍으로 자리 잡아 삶을 닥치는 대로 빨아들이기도 합니다.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에 대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생애 초기에 부모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애착의 유형과 질이 사람의 성격과 대인관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입니다.


 중요하고 근본적인 애정이 결핍되어 있다면 우리는 시간이 많이 흐른 뒤까지도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애쓰게 됩니다. 연인에게 애정을 갈구하며 연락을 독촉하다가 그를 지치게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기대했던 애정을 얻지 못하는 실망과 아픔을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해 깊은 관계를 회피하게 되기도 합니다. 애착은 단지 연애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우 탄력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과거마저 보상할 수 있습니다. 가장 근원적이고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일지라도 말입니다. 어린 시절에 가정에서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한 사람이더라도 성장 중의, 혹은 성인이 된 후의 좋은 관계 경험을 통해 안정 애착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보상을 심리 치료를 통해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정신분석 기반 상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으로 '전이(transference)'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담자가 중요한 대상(부모, 배우자 등)과의 관계를 상담자와의 관계에서 재연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지 못했던 이해와 수용을 상담자에게 받고자 할 수 있고, 배우자와 차마 하지 못했던 싸움을 상담자와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 통해 결핍과 상처가 보상되고 치유됩니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결핍을 안고 삽니다. 진작에 잊거나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것들마저 우리의 무의식 속에 변함없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설령 그것이 몹시 깊고 아픈 상처라 해도,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무수히 많은 기회를 가졌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현재가 있는 한 과거를 보상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마음속의 구멍을 천천히 들여다보세요. 충분히 채워 넣어 준다면, 달콤한 성취와 해방이 기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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