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수치스러운 나의 세계
집에 친구들을 데려오는 꿈을 꿨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본가였는데 부모님이 하루 집을 비울 일이 생긴 김에 우리 집에서 놀기로 한 것이었다. 나도 친구들 집에 여러 번 갔었고 그때마다 즐겁게 놀다 온 기억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청소도 하고 요리해 주려고 장도 봐왔다. 그런데 과한 의욕이 독이 됐다. 친구들이 도착할 때까지도 음식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꿈에서도 나는 현실처럼 요리를 못했고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프라이팬에 소시지랑 식빵으로 뭔가를 해보고 있었는데 식빵이 찢어지고 타버려서 모양새가 영 별로였다. 한 친구가 와서 잠시 지켜보더니 그거 말고 다른 걸 해보지 그랬냐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거실에서 날 기다리다가 그냥 남은 찌개 데워먹으면 안 되냐고 했다. 차라리 그게 낫겠다 싶어 요리를 그만두고 그거나 데웠다.
다음 문제는 우리 집이 너무 낡고 너저분하고 놀거리도 볼거리도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부끄럽고 난처했다. 친구들의 집처럼 번듯한 신축 아파트도 아니고 깔끔하고 감성 있는 자취방도 아닌데 내가 왜 사람들을 데려왔을까 싶었다. 친구들은 딱히 할 게 없으니 그냥 거실에 앉아있다가 괜히 돌아다니다가 했다. 다들 지루해하는 것 같아서 초조했다. 뭐라도 해보고 싶었는데 정말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렇게 초조한 와중에도 나는 혼자 슬금슬금 집 곳곳을 청소했다. 낡고 더러운 집을 당장 조금이라도 수습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았다. 그렇게 손님들을 내버려 두고 한참 혼자 청소를 하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소리 나는 곳으로 가 보니 친구들이 내 방에서 놀고 있었다. 알아서 잘들 놀고 있는 건 다행이었지만 마지막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내 방에 숨기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것이다.
나의 모든 사생활이 담긴 내 컴퓨터를 친구가 만지고 있어서 혹시 뭔가 창피한 걸 들킬까 봐 걱정이 됐다. 하지만 만지지 말라고 하는 게 더 수상해 보일 것 같아서 차마 말리지도 못하고 한 발짝 뒤에서 아닌 척 화면을 계속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내 방의 인테리어도 너무 촌스럽고 엉성해 보였다. 전체적인 톤에 안 맞는 가구들이 막 놓여있어서 나는 그게 왜 거기 있는지 친구들에게 변명하듯 설명했다.
이쯤에서 멘붕이 왔다. 모든 게 다 잘못된 것 같았다. 마음처럼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우리 집엔 먹을 것도 없고 재밌는 것도 없다. 숨기고 싶은 것만 잔뜩이다. 근데 왜 사람을 부른 거지, 부르지 말 걸! 애초에 내 방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인데. 후회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한테 대놓고 뭐라고는 안 하지만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불평했을 것 같았다. 이 집은 다른 집들에 비해 모자라네,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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