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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에가는길 Jul 11. 2024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는 꿈

너무도 수치스러운 나의 세계


 집에 친구들을 데려오는 꿈을 꿨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본가였는데 부모님이 하루 집을 비울 일이 생긴 김에 우리 집에서 놀기로 한 것이었다. 나도 친구들 집에 여러 번 갔었고 그때마다 즐겁게 놀다 온 기억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청소도 하고 요리해 주려고 장도 봐왔다. 그런데 과한 의욕이 독이 됐다. 친구들이 도착할 때까지도 음식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꿈에서도 나는 현실처럼 요리를 못했고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프라이팬에 소시지랑 식빵으로 뭔가를 해보고 있었는데 식빵이 찢어지고 타버려서 모양새가 영 별로였다. 한 친구가 와서 잠시 지켜보더니 그거 말고 다른 걸 해보지 그랬냐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거실에서 날 기다리다가 그냥 남은 찌개 데워먹으면 안 되냐고 했다. 차라리 그게 낫겠다 싶어 요리를 그만두고 그거나 데웠다.

 다음 문제는 우리 집이 너무 낡고 너저분하고 놀거리도 볼거리도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부끄럽고 난처했다. 친구들의 집처럼 번듯한 신축 아파트도 아니고 깔끔하고 감성 있는 자취방도 아닌데 내가 왜 사람들을 데려왔을까 싶었다. 친구들은 딱히 할 게 없으니 그냥 거실에 앉아있다가 괜히 돌아다니다가 했다. 다들 지루해하는 것 같아서 초조했다. 뭐라도 해보고 싶었는데 정말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렇게 초조한 와중에도 나는 혼자 슬금슬금 집 곳곳을 청소했다. 낡고 더러운 집을 당장 조금이라도 수습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았다. 그렇게 손님들을 내버려 두고 한참 혼자 청소를 하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소리 나는 곳으로 가 보니 친구들이 내 방에서 놀고 있었다. 알아서 잘들 놀고 있는 건 다행이었지만 마지막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내 방에 숨기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것이다.

 나의 모든 사생활이 담긴 내 컴퓨터를 친구가 만지고 있어서 혹시 뭔가 창피한 걸 들킬까 봐 걱정이 됐다. 하지만 만지지 말라고 하는 게 더 수상해 보일 것 같아서 차마 말리지도 못하고 한 발짝 뒤에서 아닌 척 화면을 계속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내 방의 인테리어도 너무 촌스럽고 엉성해 보였다. 전체적인 톤에 안 맞는 가구들이 막 놓여있어서 나는 그게 왜 거기 있는지 친구들에게 변명하듯 설명했다.

 이쯤에서 멘붕이 왔다. 모든 게 다 잘못된 것 같았다. 마음처럼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우리 집엔 먹을 것도 없고 재밌는 것도 없다. 숨기고 싶은 것만 잔뜩이다. 근데 왜 사람을 부른 거지, 부르지 말 걸! 애초에 내 방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인데. 후회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한테 대놓고 뭐라고는 안 하지만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불평했을 것 같았다. 이 집은 다른 집들에 비해 모자라네,라고 생각하면서.



 상당히 괴로운 꿈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까지도 어렴풋하게 꿈 속에서의 창피함과 당혹감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 꿈에서 집은 단지 집일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이 함축되어 형상화된 존재로 보입니다. 나 자신이고 내 세계이며 내 모든 것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집이 초라해 보이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웠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이 그렇게 초라하고 부끄럽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꿈속의 집은 현실의 집과 비슷했지만 더 낡고 더러웠습니다. 그동안은 사람을 들이지 않아 들킬 일이 없었지만 사실 내 세계가 얼마나 보잘것없고 초라한지 저 자신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그들이 그걸 다 알게 될까 봐 초조해집니다. 나쁜 평가를 받을까 봐 걱정하고 더 좋아 보이기 위해 애를 씁니다. 꿈에서 두려워 했던 친구들의 반응이 바로 제가 무의식 중에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말들이겠지요. 저 사람 참 재미없네, 별거 없네, 남들보다 못하네.


 이 꿈의 핵심적인 주제는 바로 수치심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치심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느끼는 부끄러움이나 창피함과는 약간 다른 개념입니다. 자기 자신이 근본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고, 부족하고, 가치 없다고 느끼는 정서이지요. 상황이나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일시적으로 느끼게 되는 감정들보다 더 깊고 고통스럽습니다. 이는 내 존재의 가치를 의심하게 되는 경험을 할 때 생겨날 수 있습니다.


 특히 유년기의 경험이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님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 준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거나, 타인으로부터 조롱이나 무시를 당한다면 '내가 많이 부족한가?', '있는 그대로의 나는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싹트게 됩니다. 이런 경험이 지속되면 그 의문은 확신이 되어 마음속 깊이 뿌리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내면화된 수치심'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모든 감정이 그러하듯 수치심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조금씩은 경험하게 되는 자연스럽고 흔한 마음속 현상입니다. 저는 평소 저 자신을 존중하고 제 삶에 대체로 만족하지만 이런 꿈을 꾼 것을 보면 무의식 한편에는 나 자신을 내보이기 부끄럽고 볼품없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조금 있는 모양입니다. 이것은 가끔 저를 괴롭게 했겠지만 가끔은 저를 돕기도 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갈고닦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요.




 그러나 과도한 수치심이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된다면 우리는 움츠러들고 외로워질 수 있습니다. 연구들에 따르면 내면화된 수치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을 좋게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타인과 가까워지는 것을 꺼리거나 친밀감을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사소한 거절과 비난에도 쉽게 흔들리고 더 큰 타격을 받습니다. 대인관계에서 고통을 느끼니 그것을 회피하게 되고, 사람들에게 나를 당당히 내보임으로써 얻을 수 있었을 기회들을 놓치게 됩니다.


 제 꿈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을 때 큰 두려움과 창피함을 느꼈고 내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꿈의 말미에는 '역시 아무도 부르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 보잘것없는 집에 왜 사람을 부른 거지?', '앞으로 다시는 누굴 들이지 않을 거야'하고 후회합니다. 꿈이 현실이었다면 저는 정말로 다시는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집뿐만 아니라 제 모든 것을 더 감추려 하고, 그러기 위해 사람들과 멀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인 것은 현실이 꿈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꿈 속에서 일어났던 재앙은 현실에서는 웬만해선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친구들을 집에 초대한다면 미리 청소를 하고 식재료를 손질해 둘 것입니다. 요리를 잘 못하니 밀키트를 구매할 수도 있고 그냥 배달시켜 먹자고 제안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손수 요리를 해보려다가 좀 망쳐서 친구들이 애써 맛있는 척을 하는 해프닝이 일어날 수도 있고요. 내 방에는 들어가지 말고 거실에서 놀자고 친구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들어가더라도 컴퓨터는 켜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좀 수치스럽더라도 외로워지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한 면을 언제든 보상할 수 있고, 솔직히 털어놓고 양해를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집에 뭐가 없어. 그냥 나가서 놀자." 그렇게 말했다면 저와 친구들은 나가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만약 모든 게 정말 꿈에서처럼 나쁘더라도 저는 여전히 저를 지킬 수 있습니다. 친구가 내 집이 별로라고 비난한다면 그러지 말라고 말할 수 있고 나를 상처 주는 그 친구와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끝입니다.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기 자신이 너무 볼품없고 초라하다고 느낀다면, 그렇게 느끼게 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누군가가 내게 했던 말이 뿌리 깊은 믿음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게 맞는지 틀렸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세상의 어떤 사람도 나를 완전히 다 알지는 못할 텐데요. 수치심을 너무 믿지 마세요. 설령 일리가 있어 보인다고 해도 그 손을 매번 들어주지는 마세요. 수치심은 네가 너무 초라하고 못났으니 당장 숨어버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조금 못났더라도 충분히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으니까요.




참고문헌

김혜원, & 이지연. (2017). 청소년의 내현적 자기애와 대인관계문제 간의 매개변인탐색: 자기몰입과 부적응적 인지적 정서조절. [KYCI] 청소년상담연구, 25(1), 247-270.
Bradshaw, J. (2005). Healing the shame that binds you: Recovery classics edition. Health Communications, Inc..
Gilbert, P., Allan, S., & Goss, K. (1996). Parental representations, shame, interpersonal problems, and vulnerability to psychopathology. Clinical Psychology & Psychotherapy: An International Journal of Theory and Practice, 3(1), 23-34.
Greenberg, L. S. (2004). Emotion–focused therapy. Clinical Psychology & Psychotherapy: An International Journal of Theory & Practice, 11(1), 3-16.
Kaufman, G. (1989). The psychology of shame: Theory and treatment of shame-based syndromes. NewYork: Springer Publishing Company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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