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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에가는길 Jul 04. 2024

돌보던 동물이 죽는 꿈

내 고양이가 죽는다면 그건 다 나 때문일 거야

 
저녁에 낮잠을 자다가 이런 꿈을 꿨다.

나는 병아리를 한 마리 데리고 있었다. 내가 부화시켰던가, 아니면 떠돌던 것을 주웠던가. 병아리는 목이 매우 길고 가늘어서 머리를 잘 가누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본래의 생태계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서 어른 닭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게 해 보았지만 잘 걷지 못했고 걷다가 목이 픽 꺾여버리더니 그걸 추스르려고 움찔거렸다. 내가 잘못된 방식으로 출발을 시켰나, 아니면 사람의 손을 타게 한 것부터가 문제인가. 그러다 곧 중심을 잡고 걷긴 했으나 내버려 뒀다간 목이 부러져 죽고 말 것 같아서 그냥 내가 거두기로 했다. 목이 꺾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안아 들고 방을 빠져나왔다.

내 보살핌 하에 병아리는 무럭무럭 자랐고 분명 닭이 될 예정이었으나 어느 순간 고양이가 되어있었다. 고양이는 귀엽고 총명하게 생겼으며 나를 부모처럼 잘 따랐지만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야생의 동물을 데리고 와서 나밖에 모르고 나만 따르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 무언가 굉장히 잘못된 일인 것 같았다. 마음이 아주 불편했다. 그런데 오래 불편해할 새도 없었다. 젊고 쌩쌩하던 고양이가 갑자기 죽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겁이 덜컥 났다. 이럴 줄 알았어, 이래서 키우고 싶지 않았던 건데, 하는 생각을 했다.
 




 두 마리의 동물이 등장했지만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한 마리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 꿈을 꾸었을 당시 현실의 저는 아기 때 길에서 데려왔던 고양이 한 마리와 같이 살고 있었고 병아리는 키워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꿈에서는  키우 고양이가 한층 더 연약하고 불안한 존재인 '목이 가느다란 병아리'로 치되었다가 곧 조금 더 현실과 가까운 형태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고양이와 함께 살던 시절 제 꿈에는 고양이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특히 고양이가 병을 앓거나 죽는 것이 단골 소재였습니다. 고양이가 어리고 건강하던 때부터 이미 그가 늙고 병들고 죽어갈 것을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려동물을 잃는 것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반려인에게 큰 두려움일 것입니다. 그런데 꿈에서 제가 슬픔이나 두려움보다 강하게 느꼈던 감정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죄책감입니다.


 꿈 속에서 병아리와 저의 관계는 저로 인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꿈을 꾸는 내내 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그은 병아리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증폭됩니다. 그러다 병아리가 고양이가 되었을 무렵엔 강한 죄의식이 되고, 고양이가 죽어가는 꿈의 말미에는 급기야 '데려오지 말 걸', 하고 후회하기까지 합니다. 저는 왜 이렇게 강한 죄책감을 느꼈던 걸까요?




 반려동물을 잃고 난 뒤에 경험는 정신적 고통을 지칭하는 용어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이 있습니다. 용어를 만들 필요가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의 상실은 극심한 고통을 불러옵니다. 그런데 한 연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잃은 뒤 사람들이 우울감과 고독감만큼이나 흔하게 경험하는 감정이 바로 죄책감이었다고 합니다. 느 정도의 책임감과 죄책감은 물을 키우고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감정인 듯합니다.


 그러나 과도한 죄책감은 슬픔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반려동물을 잃게 된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림으로써 더욱 괴로워지고, 반려동물과의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기보다음이나 사고와 같은 상실의 순간이나 그동안 해주지 못했던 것들만을 반복적으로 회상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저 꿈을 꾸고 몇 년이 흘러 실제로 고양이를 떠나보냈을 때 저 역시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했던 모든 이 실수 같았고 추억은 짙은 후회로 얼룩져 버렸습니다.


 플라스틱이 덜걱대는 싸구려 말고 더 비싼 장난감을 사줄 걸, 좋아하던 간식을 실컷 먹게 해줄 걸, 소파를 찢었다고 화내지 말 걸, 전쟁 치르듯 급하게가 아니라 좀 더 부드럽게 천천히 씻겨줄 걸, 그 사료에 염분이 많은 줄도 모르고 그렇게 오래 먹이면 안 되는 거였는데, 살을 조금 더 빼게 했어야 했나, 마지막에 다른 병원을 찾아갈 걸 그랬나, 수의사의 말을 듣지 말고 당장 입원시켜야 했나. 그랬다면 하루를, 한 달을, 혹시 일 년을 더 살 수도 있었을까. 어쩌면 길에서 살 운명이었는데 우리가 데려와 삶을 더 나쁘게 만든 건 아닐까.




 한 생명을 나의 삶 안으로 들였다면 마땅히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정성스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안전하게 보호해주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뿐입니다. 다른 생명체의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이 전적으로 제게 달려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오만일 것입니다. 저 역시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하니까요. 저는 저의 고양이를 탄생시키지 않았습니다. 단지 우연히 태어나 저마다의 한평생을 살다 가는 자연스러운 여정을 함께했지요.


 그러니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에 대한 집착은 그만 놓아주어야 합니다. 남은 추억을 평생토록 가져갈 수 있도록 잘 가꾸고, 한 생명을 돌보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했던 나 자신을 위로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이 넓은 우주에서 닿아 십여 년간 겹쳐졌다는 멋진 우연에 감사하면서요. 그렇게 되기까지 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이제 아프거나 죽어가는 동물들에 대한 꿈을 꾸지 않습니다. 덕분에 전보다 고요하게 누워 잠을 청합니다.


 저의 고양이는 길에서 살지 않고 저와 함께 살게 되어 더 행복했을까요? 제 모든 어설픈 보살핌은 나름대로 괜찮은 것이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기 때문에 지금쯤 저 먼 곳의 고양이 나라에서 제 고양이가 늘어지게 자고 있을 거라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다만 가끔은 염원합니다. 혹시라도 죽음 뒤의 세상이 있다면 그 세상의 가장 좋은 곳에서 지내고 있기를, 저와 사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면 언젠가 또다시 만나 함께해 주기를요.




참고문헌

모효정. (2015). 반려동물의 상실로 인한 슬픔, 펫로스 (Pet Loss) 증후군의 증상과 대처. 인간· 환경· 미래, (15), 91-120.
Moria A. Allen, “Helping Children Cope,” 2007.
Thomas A. Wrobel & Amanda L. Dye, “Grieving Pet Death: Normative, Gender, and Attachment Issues,” Omega 47(2003):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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