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정신으로 꿈속에 들어가기
당신은 당신에 대해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입니다만, 여유가 있다면 답해봅시다. 오늘 하루동안 남에게, 또는 스스로에게 했던 말들을 한번 떠올려 보기로 하지요. 느끼고 생각하고 원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솔직하게 이야기했나요? 이런 답이 나올지 모릅니다. “나 정도면 꽤 솔직한 편이지.“, “딱히 거짓말을 하진 않았어.”
그러나 솔직해진다는 것은 단지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지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요.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물론 그러고자 마음먹어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무엇이 진실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을 다시 하겠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진실을 알고 있습니까?
이 서두는 모두 '무의식'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심리학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지그문트 프로이트'라는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심리학자 중 한 사람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지요. 정신분석학의 핵심적 요소 중 하나는 '무의식'입니다.
무의식은 말 그대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또렷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의식 밖의 정신 영역입니다. 내 마음속에 내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떤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인간의 정신에서 의식의 수면 위에 존재하는 부분은 빙산의 일각이며 대부분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고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갑시다. 저라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저는 습관적으로 거짓을 말합니다." 이것은 제가 유난히 못돼먹었거나 감추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어서는 아닙니다. 저는 저에 대한 진실을 감추는 것이 낫기 때문에 말하지 않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뭔지 몰라서 말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친구의 사탕을 몰래 주머니에 넣은 아이에게 선생님이 "그 사탕 못 봤니?" 하고 묻는다면 아이는 혼날 것이 두려워 "못 봤어요." 하고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여자가 매력적인 남자를 만났지만 그가 자신에게 불행한 미래를 안겨줄 것 같다면 어떠냐는 친구의 물음에 "별로던데."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도 이러한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아는 늘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하고, 그래서 어떤 진실들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숨긴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수면 아래에서 우리의 결정과 행동을 만들어 냅니다. 즉 무의식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을 이끄는 거대한 힘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감춰져 있는 무의식을 꼭 끄집어내야 하는 걸까요? 무의식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해류를 모르는 채 배를 모는 항해사를 떠올려 봅시다. 운 좋게 맑은 날이 계속된다면 그럭저럭 순항할 수 있을 것이고 우연히 좋은 땅에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약 폭풍우라도 분다면요? 혹은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은데 잘 안 되고 막막하기만 하다면?
겁을 주려는 것은 아닙니다. 무의식을 구태여 파헤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놔두어도 인생은 잘 흘러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의식을 탐색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과 삶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단지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라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모르는 내 무의식을 어떻게 탐구할 수 있을까요? 상담사 앞에 놓인 소파에 편안하게 누워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내뱉어 볼까요? 아니면 최면술의 힘을 빌려볼까요? 좀 더 쉬운 방법도 있습니다. 바로 꿈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장래희망이나 삶의 목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밤마다 자면서 꾸고 금방 잊어버리곤 하는 바로 그 꿈 말입니다.
프로이트는 꿈이 무의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했습니다. 꿈을 해석함으로써 우리의 숨겨진 소망과 두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이지요. 왜일까요? 꿈은 현실과 의식의 엄격한 규칙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꿈이 대개 비논리적이고 황당무계한 이야기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꿈은 '말이 되고 그럴듯해야 한다'는 현실의 규칙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억누르고 바람직한 것만 다루려는 자아의 통제로부터도 살짝 벗어나지요. 게다가 꿈은 소망이나 갈등같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을 주재료로 삼습니다.
즉 우리는 꿈 속에서 남들이나 자신 앞에 추해질 걱정 없이 비교적 자유롭게 두려움을 피하고 소망을 충족시키려 합니다. 프로이트는 이 점을 이용해 꿈을 해석함으로써 무의식의 갈등으로부터 고통받는 환자들을 치료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더 세련되고 안전하며 정교한 치료 기법들이 많이 개발되었으므로 우리가 꼭 꿈을 통해 아픔을 치료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꿈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용합니다. 모르고 있던 두려움을 알게 된다면 대처할 수 있을 것이고, 소망을 알게 된다면 충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를 엉뚱한 곳으로 데려다 놓곤 하던 힘센 야생마에게 고삐를 달아 좀 더 부드럽게 삶을 운전해 나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 이야기를 해보자면, 꿈 속에서의 저는 도둑질을 하기도 하고 무모하게 사업을 시작하거나 배달앱에서 못된 리뷰를 달기도 하며 못나 보이는 사람을 무시하고 멋져 보이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 애쓰기도 합니다. 그래서 꿈에서 깨어나면 "와, 내가 왜 그런 짓을 했지?" 싶을 때도 있습니다.
이렇듯 꿈 속의 저는 대체로 현실의 저보다 별로지만 한층 솔직합니다. 자신이 원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을 더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거나 피합니다. 도둑질하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제가 나가서 도둑질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러고 싶은 은밀한 욕망이 마음속에 있었음을 깨달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적절한 방식으로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지요.
우리는 사실 꽤 천연덕스럽고 영리한 거짓말쟁이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소망과 두려움을 잘 보이는 곳에 꺼내놓지는 않습니다. 어떤 것들은 아주 깔끔하게 숨겨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잘 숨겨냈던 것들은 때때로 꿈 속에서 버젓이 돌아다닙니다. 달리 말하자면, 때로는 오직 꿈만이 우리에 대한 진실을 말합니다.
우리가 남들과 자신에게서 감추려고 했던 진실들은 꿈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곤 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알고 싶다면 침대에서 잽싸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는 "그냥 악몽이었어.", "그냥 좋은 꿈이었어."라고 말하지 마세요. 꿈을 붙들고 그 면면을 자세히 뜯어보세요. 그 속에서 의외의 얼굴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