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읽은 책 중에 "나는 병 고치러 산에 간다"는
책이 있었다.(윤한흥, 전나무 숲, 2014)
온 세상에는 어떤 기운이 흐르고 있는데
유독 특별하고 좋은 기운이 있어, 그 특정 장소에 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기운(氣)라는 것을 나는 잘 느껴보지 못했고, 그래서 그렇게 믿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산행 중에 어떤 곳 가면, 아주 좋은 느낌이 드는 곳이 있기도 하다.
대략의 산 속 사찰들이 평온한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책 내용은 위장병에 좋은 곳이 있고, 심장에 좋은
특정 장소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 중에 수락산 학림사에 가면 "두통"이 없어진다고 했다.
수락산의 완전 반대편에 살기 때문에 자주 가기도 어려운데, 다른 일로 근처 갔다가
두통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학림사를 찾아 갔었다.
수락산 역을 지나 좁은 골목길을 어렵개 돌아 산 길 초입에 주차를 했다.
걸어 오가는 분들이 많아 차를 타고 가기에 너무 미안했다.
그 책 내용이 아니라도
이 고즈넉한 숲 길을 한 참을 걸어 올라가는데
"있는 두통"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한여름의 폭염에 숨은 헐떡일지언정......
수락산은 바위가 많아 氣運이 강한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들은 바에 의하면,
바위속의 철 성분에 의한 자기장(?)이 돌며
일으키는 파장이 그 기운이라고 하던데....
(법당안에 앉아 밖을 바라보면)
학림사에 가면
세 명(?)의 원숭이 스승을 만날 수 있다.
입틀막, 귀틀막, 눈틀막....
"틀막"은 틀어 막는다는 의미 일 것이다.
임기 중 대통령이 바뀌고, 연일 골아픈 뉴스로
그 투통이 생기는 여름
무릇 세상살이 시끄러운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조용히 살으라는 뜻?
그거 아니고,
원숭이 선생님은 여기 조용한 절 집에서
"내면의 나"를 찾아보고 또 찾아서
아무것도 없는 그 텅빈 충만을
찾아 보라는 것이리라.
말안하고
안보고
안들으면
적멸의 어느 순간을 만날 수 있을까?
바람은 소리가 없는데, 풍경소리는 왜 들리는가? 푸른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은 투명한데 돌계단은 왜 뜨거운가
사방이 적막하다.
법당 한켠 자리를 잡고 앉아 봅니다.
한참동안 그렇게 있어 봅니다.
새소리도 왔다가고, 이사람 저사람 생각도
다녀가고 끝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지만
나는 그냥 앉아 있어 봅니다.
시끄러운 내면을 잠재우고
나름 마음조차의 고요함을 찾아봅니다. 구름만 흐르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도, 햇살도 나도...
"잠깐멈춤" 을 해 보고자 합니다.
지금 정지된 회폭처럼 딱 모두 멈추었는데 정작 내 마음만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있으니 이걸 어쩌면 좋을까요?
여러개의 방 앞 댓돌위에 하이얀 고무신이
한켤레씩 가지런하고, 방문 앞에는 대 발 가림막이 쳐저 있다.
방방마다 스님들이 가부좌를 틀고
그 적멸의 순간을 찾아가고 계실 것이다.
"어느 놈의 객" 이 오는지 가는지
저 놈은 머리 속 두통이 있는지 없는지
귀 막고 눈틀막한다고
조용한 거는 아닙니다.
머리 속으로 오가는 그 "오만가지 생각,걱정'을
잡아야지요.
어느 스님 한 분,
불러내 오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골아픈 세상
학림사 와서 다 나을 수 있는지...?
봄의 마음이 산란할 때,
여름의 더위로 숨이 막힐 대,
가을 밤송이 익는 바람이 그리울 때
겨울 수락산 정상에 눈보라가 휘날릴 때
학림사 함 들려 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