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4월
롯지는 트레커들의 숙소이자 휴게소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이 텐트를 지고 가는 상황이면 일반인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전문 산악인의 영역이 되었을 것이다. 한참을 헐떡 대며 오르고 또 오르는 길. 저만치 골짜기 넘어 산 기슭의 파란 지붕이 보이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롯지에는 침대 방이 있고, 따스한 물에 샤워도 되고, 전기도 있어서 와이파이도, 배터리 충전도 가능하다. 대략 150~200 루피(1500~2000원)를 받는데 체감상 너무 저렴하다.
식당에서는 닿밧을 비롯해 여러가지 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3,4천원이면 한 끼가 가능하고, 뜨거운 물 1천원 어치를 사면 서너 명의 커피를 탈 수도 있다.
롯지는 즐거운 공간이다.
옆에 앉은 외국인에게 간식을 건네주며 “came from?”을 물을 수도 있고(그 이상의 대화는 어렵지만), 난로 불을 쬘 수도 있다.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 차림으로 다니는 상쾌함. 2500m 이상에서는 조심 해야 하지만 4,5일만에 머리를 감는 아 그 개운함, 신 새벽 화장실 문밖에서 만나는 밤하늘의 별 빛, 무엇보다 멈추어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 저녁 식사를 기다리는 한가로운 시간. 낡은 의자에 앉아 보고 싶은 이 생각도 하고, 글 한 줄도 쓰고, 휴대폰에 있는 작은 음악 소리도 듣는다.
침대 방이기는 하지만, 그저 원두막이다. 옆 방 사람의 코고는 소리가 내 방 동료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고, 처음에는 2인실이더니, 올라 갈수록3인실,4인실로 열악해 진다. 복도 지나가는 삐꺽소리가 밤새 이어지고,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불현듯 잠이 들면 아침이다.
롯지는 늘 적당한 위치에 있지만, 다들 좋은 곳,나름 특색 있는 곳에 있는데, 이름도 재미있고, 때로 특색있는 View(전망) 주장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고라파니는 “말 물 먹이는 곳” 촘롱은 “모퉁이 마을” 구루중은 “구름 마을” 도반은 “두 물머리” 데우랄리는 “언덕 너머 가는 길” 등등의 뜻이란다. 촘롱의 캐치프레이즈는 “Heaven View” 반단티는 “Super View” 또 다른 곳은 “파노라마 뷰 등등이다. 촘롱 까지의 롯지는 그 지역 사람만이 할 수 있고, 더 높은 곳은 국가에서 관리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히말라야 롯지 부터는 “신의 영역”이어서 물소, 닭등의 동물이나 그 고기를 갖고 들어가면 안 된다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나는 배낭에 소고기 육포가 들어 있었는데, 줄곧 꺼내거나 먹지 않았다.
8일 밤을 롯지에서 묶었다. 힐레- 고라파니 –츄일레 –시누와 –데우랄리 – ABC- 시누와-지누단디
까지. 참 부족해도 즐겁고, 날씨가 차가워도 따뜻하고, 정겨운 기억이 가득하다.
히말라야의 첫 밤
포카라에서 버스를 타고 두어 시간. 거친 산 길을 넘어 작은 동네지만 트레킹 시발점이랄 수 있는 나야폴 도착.
이내 지프차로 갈아타고 험하게 힐레에 도착 했다. 단체 트레커 팀들만 지프로 이동하는 듯 했다. 흙먼지를 쏟아내는 우리는 차 안에 있고, 몇 몇 외국인 트래커들은 고스란히 뒤집어 쓰고… 매우 미안 할 정도 였다.
힐레에서 짐을 풀자마자 요란한 우박비가 쏟아졌다. 건너편 산 언덕이 하애지고, 양철 지붕이 뚫어질듯 소리가 요란하다. 힐레는 “비에 젖어 있는 곳” 이란 뜻이라고 한다. 두 세번 난리를 치더니 비는 물러가고 서늘한 산 기운이 어둑 어둑 찾아 온다. 트레킹을 시작 하는 사람들의 들뜬 목소리, 당나귀 방울의 떨렁임 소리, 이름 모를 늦 저녁의 새 소리
낯설기도 하고 정겹기도 한 공간이고 시간이다.
이층 마루에서 오래 하늘을 본다.
까만 하늘에 별들이 돋아 나기 시작한다. 불현듯 누구를 향한 것인지, 무엇에 대한 것인지 모를 그리움이 몰려 온다.
침묵 속으로 생각을 좁혀 보면, 나 자신에 대한 그리움일 듯 하다.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주변 모든 사람들도 결국은 내 살아온 지난 날들의 나 자신일 것이다.
참 쉽지 않았구나.
보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57년을 살아온 과정이 큰 줄기로 보면 어려웠다고 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나이도 이름도 이리 저리 혼란스럽고, 어린 시절 참 가난하고 부족했다. 앞니가 빠진 뒤, 양쪽의 이빨이 그 공간을 메울 때 까지 도대체 몇 년을 보냈을 것인가. 가슴이 저리고 아프다.
시골에서 공부 잘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아주 두드러지지도 못했다. 아버지의 힘든 희생으로 도회지 고등학교를 가고, 군대 마치고, 어렵사리 대학 졸업하고, 기아자동차에 입사하고, 결혼하고, 아들 딸 낳아 키우고, 열심히 성실하게 내 작은 모습에 행복을 채우며, 노력하고 버둥거렸지만, 늘 조금 못 미치고 아쉽고 부족 했다.
많이 아주 많이 아쉽다.
조금만 더, 한 계단만 더, 한고비만 더 오르고 나가고, 이루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자부 할 수도 없고, 주춤거리고 나가지 못한 내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도
이 시점에서 필요한 일 같지도 않다. 다만 좀 더 용기를 냈으면,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그리고 더 지혜로웠으면, 조금 더 나아지고 좀 더 여유로워 지지 않았을까. 2015.4.11
밤 새 잠을 설쳤다. 롯지라는 형태의 익숙치 않은 숙소 탓도 있겠고, 얕은 잠이 들었나
싶은데, 누군가 아~아악!! 하는 외마디 비명소리, 밖의 소란스러움, 옆 방의 코고는
소리…내가 그렇게 방해를 받고 있듯이 나도 다른 사람 방해 될까 조심하고, 깜빡 잠들고
다시 깨고를 반복 했지만 새 벽은 아직 멀었다. 그래도 호기심 충만한 새 아침은
상쾌한 시작이다.
이제 부터 본격 트레킹. 먼 곳의 바람은 가까운 곳의 폭포 소리였고, ‘비에 젖은 곳’힐레는 온통 폭포와 물 천지의 계곡.
이제 부터 오로지 오르고 또 오를 뿐이다. 세시간 이상의 돌계단을 오르고 올라 점심을 먹은 곳이 “울레리”- 계속 오르막이란 뜻.
출발의 들 뜬 목소리들은 숨 헐떡임으로 바뀌고, 거친 계단에 더해 코를 찌르는 당나귀들 똥 냄새, 따가운 햇 살….
그래도 오늘은 첫 날이다. 점심은 네팔의 야채가 잔뜩 들어 간 한국식 비빔밥—달고 맛있다.
천천히 천천히
올라가야 할 길은 끝이 없다. 낭게란티, 롯지의 작은 아이가 비걷이를 서두른다.
사람들도 나도 아직 히말라야를 모른다. 그저 서둘러 우비를 뒤집어 쓰고 걷는다. 내일도 모레도 그래야 할 것을 모른다.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여행도 인생도 미지의 시공간으로 나가는 호기심 아니겠는가.
빗 속의 닐리 구라스 꽃이 탐스럽고 예쁘다. 네팔의 어떤 여자 아이가 한국의 꽃을 묻기에 ‘무궁화 꽃 ‘ 노래를 불러 주었다.
무궁화~무궁화~ 우리 나라 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 나라 꽃…. 이렇게도 불렀다.
막걸리~막걸리~ 우리나라 술. 삼천리 강산에 우리 나라 술…. 웃기게 어릴 적 이야기다.
고라파니 –말에게 물 먹이는 곳- 2,750m 오늘의 목적지이다. 조금은 지루하고 지친,빗 속의
고라파니는 규모 있고 장터 같은 번화한 롯지이다. 푼힐 전망대가 가까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1층은 식당. 따스한 장작 난로 곁에서 무슨 우유차를 마시니 기분이 좋아진다.
삐꺽이는 2층 숙소에 오니 창밖의 아! 창연한 설산이여! 새하얀 눈이 뒤덮인 안나 남봉 기슭이
아주 가까이 다가서 있다. 그래, 처음 만나는 설산이다. 가까이 운집한 닐리구라스와 신선
깜짝의 설봉으로 우린 무척 흥분 했었다.
150루피를 내고 와이파이 번호를 받아서 서둘러 식구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내가 히말라야에 잘 있음을 잘 다니고 있음을 알리는 첫 소식 이었다.
어둠 속에서 빗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침낭 속에 품은 뜨거운 물통이
히말라야 3,000m 의 밤을
따스하게 덥혀 주고 있다.
여행은 고독을 즐기는 것인가.
밤 새 빗소리가 요란하다. 깊이 잠들기 어려운 히말라야 트레킹은 고독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고독을 만들어 주는 것인가.
참기 어려운 밤에, 그래도 보이지 않는 창 밖의 눈 부신 남 봉의 거대한 존재감을 느껴보는 것은 큰 위안이다.
침낭 속의 뜨거운 물병을 발 아래까지 굴려 갔다가 다시 굴려 올리고, 룸 메이트 코고는 소리와 내 호흡을 일치 시켜 보기도 하고,
마음 속 108배를 하면서 이 꼼짝 할 수 없는 밤 놀이를 하고 있다.
새벽 4시. 가이드가 ‘오늘 푼힐 일출 불가능’ 을 알려 왔다.
아쉬웠다. ABC 8일을 11일로 바꾼 것은 세상 최고라는 푼힐 전망대 때문 아닌가.
푼힐을 포기하고 데우랄리 봉우리를 넘어 ABC 방향으로 길을 잡은 아침.
닐리 구라스 군락지를 지나는 동안 거대한 붉은 꽃 구름으로 마음이 달래지는 듯 하더니, 이내 3,000m 봉우리 부터 우리는 결국 우비를 써야 했다. 짙은 안개, 바람, 그리고 싸늘한 냉기… 이젠 끝없는 내리막 길, 협곡을 파고 들고, 돌아 나가는 3,000 m 봉우리는 미끄럽고 추웠다.
반단티는 ‘정글 숲’의 뜻이다. 계곡 속에는 세찬 물소리를 만드는 폭포도 많고, 하늘 벽 같은 벼랑이며 습기 머금은 푸른 이끼들이 가득 했다.
당나귀 분뇨가 물에 불어 흙과 구분이 안 되는 이 궂은 날씨가 즐거운 것은 그래도 산 중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따스한 밀크차, 그리고 앞 에 나타 날 일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때문이리라.
다타파니(2590m) 의 점심은 수제비. 먹는 것도 비(雨)냐고 ? 간판에는 안나 남봉의 경치가 죽여준다는 “Super View” 였지만, 우리는 나뭇가지에 건조시키는 젖은 운동화 뿐이었다. 어느 가파른 숲 길에서는 배하얀 원숭이 두 마리가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오르고 내리고 돌고 건너는 정글 숲에 비는 그치지 않았고, 사람들은 말을 잃고 헉헉 댔다. 3,200m 데우랄리에서 우리는 2300m 츄일레로
우리는 고도를 계속 낮추고 있는 중이다,. 숲이 끝나고 계곡을 벗어나니 비도 멈춘다.
빨강색 롯지, 츄일레, 사람들은 식당의 난로 옆을 떠나지 않는다. 200 루피 주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다.
해질 녘, 2,300m 언덕, 하늘이 개이고, 구름이 구릉을 벗어난다.
강 건너 봉우리 저 쪽, 마차푸차례의 의연한 모습이 형체를 서서히 나타낸다.
발 아래는 수백 계단의 비탈 밭 끝 깊은 킴롱 강물이 보이고, 히말라야 언덕의 시간이 한가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