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구름다리가 걸려있었다. 본격적으로 안나 베이스캠프로 들어가는 계곡 트레킹을 시작하는 아침. 하늘위에 큰 구름다리가 보였다.
모디강을 옆에 두고, 우유 빛 세찬 물소리를 들으며 끝없이 오른다.
모두들 힘들어 하는 표정이다. 오르막, 오르막 계단이 줄을 서고, 숲이 많이 우거지고 작은 물줄기들이 이루는 폭포도 많은 밀림지역이다.
밤부-대나무 지역을 지나 두물 머리 도반(2505m)에서 점심을 먹었다.
걷는다. 아주 조용히, 말을 줄이고 묵상하는 기분으로….콧 노래도 하고, 다라니경도 외우며, 발바닥 가운데가 히말라야 전체를 밟는 느낌으로, 숨 헐떡이지 않게 천천히 꾸준히 걸어야 한다.
이 순간,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걷는 것이다. 순전히 내 두 다리로 저 높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이야말로 근원적인 즐거움 아닌가. 발바닥으로 전해 오는 히말라야 땅의 안온한 기운이 전해 오는 것을 느껴야 한다.
그래서 여기 온 것이다. 힘들다고 요란을 떨 일이 아니다. 걷는 기쁨으로 그득 그득 취해야 한다.
내 스스로에게 지치거나 져서는 안 된다. 길가의 작은 꽃들에게 눈 길을 주고, 먼 곳의 봉우리에게 인사도 하면서, 걷는다.
도반을 지나면서 다시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어려운 길이다. 그래도 즐겁고 기쁘고 황홀한 길이다. 한 발을 더 가면 오늘의 숙소가 있고,
내일의 목적지가 있지 아니한가.
히말라야 롯지(2960m)에 도착 해서는 뜨거운 물(100 루피)을 사서 일행들에게 빵빵 해진 스틱 커피를 돌렸다.
주머니에 넣어 둔 땅콩 봉지도 터질 듯이 빵빵 해 졌다. 배낭 속의 육포는 깊숙이 감추었다. 여기는 신의 땅이다.
눈 앞의 데우랄리(3,210m)는 다가오지 않고, 엄숙하고 빳빳한 사관생도 같은 봉우리가 줄지어 섰다.
먼 옛 날, 빙하로 묻혀 있던 곳인가? 바위 벽은 검고, 이따금 작은 눈사태가 세찬 소리를 울린다.
고개를 까집어 하늘을 본다. 하늘보다 더 크고 높은 벼랑이 보인다.
어젯 밤, 쏟아졌을 눈 폭포를 지난다. 발 밑으로 푹푹히 쌓인 눈의 촉감이 전 해온다.
계곡 저 위로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느낌이 쌓이고 흘러내린 백설의 봉우리가 보인다.
소리를 지르고 싶다. 기쁜 함성을 질러 보고 싶다.
이제 진짜 히말라야인가.
힘겨운 발걸음으로 데우랄리 롯지에 도착하여 옷을 따스히 갈아 입고 나서니,
저 아래세상으로 부터 구름이 오르고 있다. 그래, 여기는 신들의 영역이니
저쪽 길다란 협곡아래는 사람들의 세상이다. 가이드가 짐짓 가리키는 하늘 같은 바위 벽을 보니 험하고 높다란 바위 벽에 부처님 형상이 뚜렷하다.
검은 바위 벽에 황금 빛 부처님 모습, 신들의 영역이라더니 저기 부처님이 뚜렷이 계시는 구나.
기쁨이다. 저 거친 산봉우리 격하게 흐르다가 수직으로 딱 깍아지른 단애의 공간에
부처님이 계시는구나.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은 하늘 벽, 뒤로 옆으로 이어지는
백색의 연이은 봉우리, 거기서 흐르는 계곡의 우유 빛 물소리.
자연의 신비인가, 부처님의 신통력이신가.
얼마나 사실적인 부처님 형상인가의 문제는 부질없다.
마음 속의 문제 아닌가 말이다. 이미 사방의 모든 것들이 신비하고 신령스런 곳이다.
마음의 부처를 찾는 여행자에게는 그저 감동이고 환희로움 인 것이다.
좀 더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부처님 앞에 서 본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마음을 가다듬고 두 손을 모은다. 반야심경을 더듬거려 보기도 한다.
수일 동안을 걷고 또 걸어 이제 3700m 의 높다란 곳에 와 있다.
내 일은 부처님 아래 계곡으로 파고 들어 저 깊은 협곡을 따라 올라 갈 것이다.
모두가 감사한 일이다.
인연 따라 오고 가는 발걸음이라지만, 여기 히말라야를 터벅이는 나그네가,
절대적으로 와 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이 곳에서, 저 위 부처님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있음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히말라야에서 만난 가장 멋지고, 다정하고, 친해지고, 오래 기억에 남는
존재는 마차푸차례이다. 우리는 안나푸르나를 다녀오기보다 마차푸차례를 다녀 왔노라고 말 할 정도이다. 츄일레의 저녁, 구름 속에서 나타났던 마차푸차례는 트레킹 마지막 날까지 우리 곁에 있었으며, 그 황홀 장엄 자태를 백 가지 천 가지 모습으로 아낌없이 보여 주었다.
마차푸차례는 에베르스트 쪽의 아마다블람, 스위스의 마테호른과 함께 세계 3대 아름다운 봉우리 중의 하나이다. 네팔인 들이 워낙 신성시 하는 곳이어서 1957년 영국의 지미 로버트 원정대가 정상 50m 직전에서 발걸음을 멈춘 영웅의 미담을 남긴 곳이며, 이 후 등반이 금지되어 누구도 정상을 오르지 않은 미답의 봉우리이다.
츄일레의 푸른 새벽, 시누와의 늦은 밤, ABC의 석양 그리고 포카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마차푸차례는 우리와 함께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