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4월
4월16일- 7일차
데우랄리 롯지 언덕에서 계곡 아래로 깊숙이 내려간다.
깊은 협곡, 세차게 물이 흐르고 작은 잡목 숲을 나서면 이제부터 나무와 숲이 없고, 눈과 햇 빛 그리고 빙하의 나라이다.
흰 설봉을 가운데 두고 우람한 흑 빛 벼랑들이 줄을 지어 섰다.
여기는 원시의 세계이다. 세상이 생겨나는 모습이 이랬을 것인가?
먼 곳의 가운데, 빙하 돔이 보인다. 만년설 빙하의 칼날 같은 기세보다 밀가루처럼 고운 포근한 모습이다.
그 뒤로 옆으로 강가푸르나(7,454m ), 안나푸르나 3봉(7,555 m) , 왼편은 히운추리(6,441m) DHFMS VUS은 마차푸차례(6,993m) ….
듣고 물어 보아도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 태초의 세상에서 나는 우리는 그저 어린 아이들이다.
우루릉, 우르릉 산의 외침이 들리고 건너 계곡 높은 곳에서 눈더미가 쏟아져 내린다. 비단 휘장을 펼치듯, 하얀 물 길이 쏟아져 내리는 듯,
두려움 보다는 히말라야가 보여주는 환영 이벤트 같다는 생각을 한다.
황막함 보다는 찬란함, 힘겨운 고행 보다는 신기한 곳의 소풍 같은 기분이다. 이 준엄한 외침과 기세에 정작 우리는 즐겁기만 한 것인가.
게곡의 끝은 마차푸차례 베이스캠프.
눈이 하얗게 부시도록, 눈 빛에 눈을 뜰 수 없도록 햇 살이 빛난다.
점심을 먹고 그 눈부신 정원에서 달달한 커피를 마신다.
지붕으로 꼭대기로 저 빙하 돔으로 오르고 싶다.
폼 재고 잘난 척 할 일이 아니다. 이 숙연한 지구 한가운데 높은 봉우리에 서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내 살아오고, 살아 갈 날들을
되새기고 가다듬어야 할 날이다. 그런데도 가슴 속을 오가는 불 꽃 같은 뜨거움 들이 왁 왁 소리를 내지른다.
그래. 그리하도록 내버려 두자. 날 가두고 옥죄는 이성과 습관화 된 자제력을 좀 풀어 놓아도 좋지 않을까.
산 속의 어린아이, 맨 발에 얼음이 박히도록 뛰어 놀게 두어도 좋지 않은가.
수 백마리 검 갈색 새떼가 하늘을 나른다. 새까만 벼랑 쪽에서는 보이지 않다가 흰 설봉과 하늘을 바탕으로 하면, 떼 지은 비상이 보인다.
그대로 오르고 싶다.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발 길을 벗어나 외진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길다란 발자국을 남기며, 더 오르고 싶다.
발목이 빠지고 무릎이 덮이고 허리가 감기는 눈 속으로, 숨이 턱에 차고 기운이 다 할 때 까지 오르고 싶다.
새는 새 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하지 않는가.
자유롭다. 아주 자유롭다.
신의 영역에서
어제 시누와 롯지 들어올 때부터 여러 개의 표지판을 보았다. 여기는 神의 영역이니 닭, 물소, 돼지 등을 갖고(데리고) 들어 오지 말라는
내용.히말라야 롯지 부터는 구체적으로 Temple 영역이니, 고기를 먹거나 노상방뇨 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고, 가이드도 주의를 주었다.
神들의 영역! 참으로 가슴 벅차고 듣기 좋고, 기분이 좋아진다.
성스럽고, 멋스럽고, 경이로운 히말라야 성지 깊숙이 들어 온 것이다.
장엄한 산봉우리들의 외호, 산꼭대기로 부터 쏟아지는 물 줄기, 세찬 물소리, 하늘 저 높은 눈부신 설봉에서 부터 땅으로 이어지는
빙하의 비단 띠까지… 그 깊숙한 봉우리 숲 속에 지금 내가 서 있는 것이다.
우르릉, 우르릉
산이 울리고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마치 폭포처럼 눈이 쏟아져 내린다.
섬뜩한 느낌 보다는 짜릿한 기쁨이 솟는다. 산의 외침이다. 살아 있음의 움직이고, 보고 있음의 그리고 어쩌면 먼 곳에서 온 나그네에 대한
환영의 몸짓 아닐까.
보이지는 않아도 神들이 사시는 곳.
눈에 보이는 사람이 살지는 않는 곳,
마음으로 두 손을 모은다. 신의 존재에 대한 세속적인 의문이나 종교와 종파 그런 것들과는 상관이 없다.
기도와 기원, 욕심과 바램 그런 것과도 한참 거리가 멀다. 절대적인 위엄 앞에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몸을 단정히 하고
생각을 바르게 하면서 온 몸으로, 온 생각으로 신령스런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일 뿐이다.
히말라야를 찾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거대하고 장엄한 자연 속에서 작은 한 점, 인간으로 마주 서 보고, 나약함 보다는 그 속의 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찾아 보는 것 말이다.
가슴이 떨리도록 큰 기쁨이다. 오래 잊혀지지 않을 소중한 오늘이다.
ABC 여기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
ABC에 도착 했다. 神의 정원 산책은 사람들에게는 좀 힘든가 보다.
4,000m 를 넘으면서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고,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완만한 S 자 곡선의 끝은 짙은 안개 속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ABC 표지판이 안개와 눈 속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조차 없는 백색의 세계. 그 속의 5색 롱다와 타르초도 펄럭임을 멈추고 있다.
아름답고 장엄한 新세계이다.
오래 꿈꾸어 왔던 열망의 땅이요, 가슴이 활짝 열리는 기쁨의 高地아닌가.
롯지 식당에 올라가 뜨거운 밀크차를 한 잔 마신다.
따스하게 전해오는 위 속의 온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더 갈 수는 없다. 키 높이만큼 눈이 쌓였다. 구름 사이로 안나 남봉(7,219m)이 잠시 얼굴을 내밀고, 안나푸르나 (8,091m) 와 주변 봉우리들도 저녁 햇 살을 받으며 트레커 들과 잠시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는 그만이다. 안개와 구름 속에서 잠깐 잠깐 모습을 들어 낼 뿐 이이어서
봉우리 이름이 좀처럼 와 닿지 않는다.
트레커들이 더 갈 수는 없다. 저 위에 박영석 대장의 위령비가 있고, 그 위로는 진짜 눈과 빙하의 세계, 전문 산악인들의 영역이다.
기쁨이 크다. 이 기쁨은 혼자만의 것이다.
나의 버킷리스트에 들어 있는 마라톤 풀 코스 완주, 히말라야 트레킹, 108사찰 108배 순례는 마쳤고,10년의 아침 108배는 진행 중이다.
직업과 사회생활에 관한 자동차 대리점, 세일즈 전문강사가 남는다. 어떻게 이루어 갈 것이인가.
아주 높고 깊은 침묵의 세상에 와서 곰곰 나를 되새기고, 가다듬어 보는 중요한 시간이다.
일상에서도 늘 떠나지 않는 상념과 걱정이거늘 지금 여기서의 그 것과 무엇이 다르랴?
히말라야를 오르는 첫 날 부터 묵묵한 가슴으로 줄 곳 이 생각을 했었다. 생각이 많은 기획가 보다는 실천이 앞서는 행동가로 살아야 한다면, 여기 이 자리는 결단의 시간과 공간이 되어야 할 것 아닌가.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어슬렁거리고 있지만 마음을 집중하고 다독이느라 나는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