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4월
빙하의 땅.
강이 흐른다. 세찬 소용돌이가 치듯, 홍수처럼 강이 흐른다.
ABC 언덕 너머는 빙하의 강이다. 전혀 움직임이 없는 흐름. 보이지 않게 밀려 내려 가는 것인가.
저 깊숙한 내면의 흐름은 어떤 모습일까. 하얀 불구덩이 속은 어떤 모습일까?
빙하의 강 둑에 서서 오랫동안 건너편 언덕을 바라본다. 빠지면 찾을 수 없다는데, 보기에는 거뭇 거뭇 흙이 섞인
얼음과 눈덩이 아닌가. 어느 때 큰 둑이 터지듯 와르륵 무너지고 터져 나오는 것인가.
영원한 산악인 박영석 대장은 저 빙하 이전의 어느 얼음 구덩이에 빠지신 것일까.
박대장의 위령비 앞에서 서성대는 낯선 사람들을 모아 “ 박 대장님의 영면” 을 기원하는 묵념을 올렸다.(내가 대견하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이 고봉 설원에서의 교감은 의외로 따뜻하고 편안하다.
일상의 평범한 도시인의 생활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가까움인 듯 하다.
빙하의 강가에, 베이스 캠프 저 위 쪽의 한 켠에 나의 타르쵸를 걸었다.
조심스럽게,은밀하게(스닐이 도와주었지만), 겸손하게 걸었다.
나 만의 비밀스런 히말라야 이벤트- 오래 오래 가슴에 담아 둘 기념비적 추억이며 삶의 지표와 활력소로 삼으리라.
동행자 두 명이 밤 새 무척 괴로워 했다. 두통약, 소화제,혈압약, 청심환 까지 다 먹어 보아도 별 효과가 없고, 그저 아주 가만히 누워 있어야 했다. 고산병은 참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찬란한 아침 햇 살에 안나푸르나의 흰 봉우리를 보리라는 바램은 무너졌다.
잠시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짙은 안개가 가로 막았다. 안개, 안개… 3,4분 사이로 주변 풍광이
바뀌어서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오직 우리의 믿음. 마차푸차례 봉우리만 다양하고 의젓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준다.
이제 내려가야 한다.
눈이 많이 쌓인 내리막 길이니 아이젠을 해야 한다.
뒤 돌아보기 보다 맞은편 안나 남봉이나 마차푸차례 골짜기를 내려다 보는 경치가 너무 멋지다.
사실 아쉽고 아쉬워서 마음을 쉽사리 옮기지 못하겠다.
다시 파랑새를 만났다. 신비한 파랑 색 이다. 검은 흙이나 바위에 앉을 법한데, 그냥 눈 밭에
앉았다가 다시 날아가곤 한다.
파랑 색은 꿈이다. 다시 만나고 싶은 안나푸르나의 꿈이다.
아니 나는 겸손하기로, 저 베이스 캠프 위의 바위 한 켠 롱다에 타르쵸로 적어 걸어 놓고 왔다.
이 만큼, 이 정도면 행복하다. 그리워하고 아쉬워 함이 더 행복 아닌가.
다시 오고 싶다는 아쉽다는 마음은 그냥 마음인 것이다. 그것이 욕심으로 커 가면 안 되는 것이다. 늘 생각하리라. 잠시 스친 햇 살 비치는 안나푸르나와 거대한 빙하의 계곡과 내가 걸어둔
나를 향한 기도문을 늘 기억 하며 살아 가리라. 다시 오고 싶은 파랑 색 꿈은 꿈으로 간직 하리라. 내 기도문, 더할나위 없는 멋진 곳에 걸어 두었노라. 가슴 벅차고 용기가 솟아나는 대단한
내 삶의 Event 였다.
내려 갈 수 있음도 용기이리라.
커다랗고 힘찬 발걸음을 내 딛으리라.
16일.시누와-데우랄리 10Km
17일 데우랄리-MBC-ABC 7Km 우리가 이틀동안 걸어 올라간 거리이다.
오늘 우리는 17Km를 걸어 내려 왔다. 밤부에서 방(롯지)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MBC를 지나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 했다. 모두들 말이 없다. 지치고 힘든 때문이다.
그리고 올라갈 때의 호기심과 탄성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다. 히말라야는 오르고 내리는 어느 곳에서도 기쁨과 활력과 신성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MBC에서 데우랄리를 거치는 길. 장엄하고 신비한 세상이다.
도반과 밤부를 지나는 비에 젖은 길가에도 즐거움과 기쁨을 맛 볼꺼리가 가득하다.
낮고 작은 폭포의 물소리, 별 꽃처럼 늘어선 작은 꽃들, 길고 가냘픈 수수밭, 이제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올라가는 트레커들의 미소….
즐거운 탄성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데우랄리 지나서 대전서 온 여자분이 굴러서 많이 다쳤다는 다급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부근에서 포터 한 분이 죽었다고도 한다. 발 아래 계곡으로 헬기가 다급히 올라간다.
도반에서 점심을 먹고 밤부에서는 감자를 먹었다. 더 가야 하기 때문이다.
비에 젖어 시누와에 도착 했다. 다시 헬기가 올라가고… 한국과 전화가 가능 해지자 ,사고 난 분이 죽었다는 방송으로 한국이 난리 났다, 걱정이 많다는 등의 소란함이 잠시 있었다.
저녁, 다시 계곡의 안개가 저녁 연기처럼 산으로 오르고, 평온한 산 속의 적막이 어둠 속으로 파고 든다. 이제는 느낌상 안전 지대?
저녁을 먹고 침낭 안에 뜨거운 물병을 넣고 잠을 청한다.
난로가 에서 장작불을 쬐고 있다. 온 몸이 따스하게 젖어온다.
꿈을 꾸고 싶다, 까마득히 높은 설봉에서 스키를 타듯 미끄러져 내리는 ….
수행 1.
마음을 닦는 것이 수행이라면, 수행은 저 넘보지 못할 4차원의 세계로 날아가 버린다.
마음의 실체도 모르는데, 어느 곳에 있는 어떤 마음을 어떻게 닦는단 말인가.
기도하는 것이라면 조금 실체가 잡힐 듯도 하다. 절실하게 바라고 가리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원하는 것에 대해, 손에 쥐고 이루게 되도록 보이지 않는 절대자에게 요청하는 것 아니겠는가.
6년 전 어느 날, 아들을 논산 훈련소에 데려다 주고, 문득 108배를 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그 때, 직장 생활에서도 큰 변곡을 그리던 해 였다. 승승장구는 아니어도 차분하고 확실하게
좋은 페이스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방향성을 잃어 버린 시절이었다. 그 날 부터 새벽 5시 108배를 시작 하였다.
서툴고 힘든 것은 문제가 아니다. 잡념, 허망한 상상과 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괴로운 일이었다.
108배를 해서 무엇이 이루어 진다는 말인가.
시간이 많이 흘렀다. 갈망과 서원은 실망으로 바뀌어 가고, 구체적으로 잘 된다는 일은 없었지만
108배는 멈추지 않았다. 6년이 마무리 되는 시점이다.
어쩌면 조금씩 감이 오는 것 같다. 108배 절 하기에 집중 하면서, 아주 천천히 나를 잊어 가거나, 반대로 절 하고 있는 나 스스로를
조용히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갈망하고 서원하는 기도’ 로 부터 벗어 나고 있는 것으로 생각 된다.
끝없이 밀려드는 잡생각을 떨치고 ‘절 하고 있는 나’ 에게 내가 집중하는 여유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풀이 하던 허망한 바램을 스스로 덜어내고, 고요한 내면의 세계를 흘 낏 거리게 되었다.
나는 지금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인가.
넘보지 못할 것 같은 어려운 마음 닦기를 조금씩은 하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