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면역체질

by 온우








비는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런 날이면 나는 가만히 창가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한다.


잿빛 구름 아래,

길가의 나무들은 한쪽으로 고개를 숙인다.


바람보다 더 조용한 소리로 비가 내린다.

아스팔트 위를 부드럽게 적시는 빗방울.

가로등 불빛을 따라 흘러내리는 창문 물줄기.

우산 끝에서 조용히 떨어지는 방울 하나.


그 조용한 움직임들이 기억 속 한 장면을 데려온다.


붉게 젖은 횡단보도.

차창 너머 흐릿해진 신호등.

투명한 비닐우산 너머 너의 옆얼굴.

말이 없던 순간들과,

그 고요함 속에 가만히 스며들던 감정들까지.


누군가는 그 속삭임에 잠이 들고

누군가는 그 속에서 깨어난다


어떤 기억은 눈부시게 말랐고,

어떤 감정은 젖은 채로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른다고 모두 마르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또 어떤 건,

비가 다시 내릴 때마다 처음처럼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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