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할머니는 한 달에 두 번쯤 정확히 5시 30분에 오신다. 자동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큰 소리로 나를 부르신다. 눈이 마주치면 책 제목을 말씀하신다. 언제나 보고 싶은 책이 정해져 있다.
그날은 모모할머니가 찾는 책이 없었다. 비슷한 주제, 비슷한 제목의 책이 있길래 몇 권 꺼내드렸다. 모모할머니는 등에 메고 계시던 가방을 내려놓고 그 안에서 까만 비닐봉지를 꺼내셨다. 봉지 안에는 종이 조각 서너 개가 들어 있었다. 그중 하나를 펼쳐보시곤 내게 내밀었다. 거칠게 찢은 신문 조각이었다. 까만 비닐봉지 안에 들어있는 종이는 책 제목이 적힌 신문 조각이었다. 모모할머니가 찾는 책의 출처가 신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선생님~ <톨스토이 단편선> 찾아주세요."
모모할머니가 오셨다. 늘 그렇듯 신발을 벗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 서 계신다. 책을 찾아 리더기로 콕콕 찍고 모모할머니에게 건네드렸다.
“2권은 못 봤는데. 있는지 몰랐어요. 고마워요. 이 책은 노동에 관한 아주 좋은 책이에요. 옛날에는 손에 상처가 없으면 밭에서 밥을 먹으라고 했어요. 상처가 있어야 상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했어요. 내 손가락처럼 굽은 손이 아주 많았어요.”
모모할머니는 자신의 손을 활짝 펴서 보여주셨다.
모모할머니 손은 거칠어 보였고 주름도 많았다. 엄지손가락은 바깥으로 굽어있었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었다. 검지와 약지에는 밴드가 붙어 있었다. 이내 손을 거두시고 빠르게 밖으로 나가셨다.
모모할머니가 떠나고 내 손을 펼쳐보았다. 곱게 바른 젤네일이 번쩍이고 있었다. 수영을 하지 않아 계속 끼게 되는 금반지 2개. 손에 상처가 하나도 없었다. 괜히 상처 하나 찾고 싶어서 손을 뒤집기도 하고 손목까지 살펴보았다. 오늘따라 젤네일이 과하게 번쩍거렸다. 나도 상처 많은데... 손은 아니지만...
도서관 일을 하다 보면 손에 상처가 나는 일은 드물다. 대신 마음에 상처가 생기는 일은 아주 잦다. 도서관을 드나드는 수많은 이용자를 마주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마음에 생채기가 남고 만다. 모모할머니처럼 펼쳐서 보여줄 수 없지만 그 상처가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있다. 가끔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올라올 때도 있다.
모모할머니가 남긴 이야기에 생각이 깊어졌다. 모모할머니 말이 맞다. 상처란 곧 노동의 흔적. 할머니 손과 내 마음에 상처가 있기에 오늘도 우리는 밥을 먹는다. 우리의 상처를 영광스럽게 위로하는 모모할머니가 나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