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의 편지] 이야기 열셋
앤 섹스턴의 시를 읽어.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화살 없는 과녁을 생각해. 그래서 내가 어릴 적에 좋아했던 것은.
안톤 체홉의 단편. 단편에 나오는 이반 일리치라는 이름. 갈매기. 코스챠의 죽음. 비극. 호메로스. 푸시킨. 백석. 백석의 잃어진 번역. 불타버린 시의 초고. 활자의 자의성.
그리고 도서관의 책. 잉크가 바랜 푸른 표지. 절판본과 최신본. 벽에 걸린 원화. 연필. 도색이 벗겨진 피아노 건반. 마르크스. 카프. 인류애. 인류애라는 말에 담긴 고동 소리.
그리고 심장이 뛰는 소리.
그러나 이 모든 걸 먹어치운 것들. 밤 늦게까지 켜진 형광등. 귀를 막아도 들려오는 흐느낌. 고요했던 정적의 폭동. 싸움. 언쟁. 손톱 밑에 파고드는 살갗. 잊을 수 없는 고통.
잊어서는 안 되는 과거.
찢어진 손가락 사이로 내비치는 혈관. 송곳. 그리고 옷소매. 내 몸을 끝까지 가리려는 기다랗고 기다란 옷소매.
안 돼. 말이 되지 못한 목구멍의 울렁거림.
안 돼. 뇌리에 스치는 광기.
그리고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살의가 있었다.
과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Oh, love, why do we argue like this?
I am tired of all your pious talk.
Also, I am tired of all the dead.
They refuse to listen,
so leave them alone.
Take your foot out of the graveyard,
they are busy being dead.
삼 년 전 여름으로부터.
추신.
나는 많이도 망가졌다.
등 뒤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말소리에 이웃집 사람들이 밖에서 떠드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아. 그런데 왜 집 안에서 들리는 것만 같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본다. 그들의 대화가 보인다. 방전된 모니터를 콘센트에 꼽아놨더니 다시 전원이 켜졌나 보군. 그래서 직전에 틀어놓았던 영상이 다시 재생되는 거고. 진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안심한다. 전원을 끈다. 조용해진다.
진짜 사람의 목소리에는 그 어디에서도 안심할 수가 없다. 나는 그 정도로 망가졌다. 그러나 망가지기 이전에는 살아있었던 적이 없다.
불쌍히 여기소서.
노랫소리가 들린다. 어디에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아리아. 그러나 이 꿈에서 깨어나면 잊어버리겠지. 귀가 시리도록 정확하게 내리꽂히는 음정의 선율. 저걸 뭐라고 하더라. 알토. 아니 저 높낮이는 테너인가.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리고 옆에서 순록떼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아니. 아니지. 이건 체홉의 정신병동이잖아. 나는 순록떼를 본 적이 없지. 시끄러운 우체국에서 순록떼를 보다가 죽음을 맞은 건 내가 아니라 그 정신병동의 의사잖아. 그 사람의 이름이 아마 이반이었지. 아니. 아니지. 이반은 환자의 이름이지 의사의 이름이 아니야. 잠시. 잠깐만. 알았어. 이제 꿈이라는 건 잘 알았으니까. 제발 저 순록떼 좀 내 눈앞에서 치워 봐. 나는 적어도 소설처럼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의사가 아닌 한 남자가 촛불을 들고 천천히 온천을 건너간다. 그래 그렇지. 나는 이 장면을 어릴 적에 본 적이 있는데. 아니 데자뷰 따위가 아니라 정말로 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망상이나 이런 꿈 같은 것에서가 아니라 진짜. 정말로 보았다니까. 아마도 티비의 종편채널에서 편성된 걸 봤었겠지. 그 당시에는 그런 채널들에서 옛날 영화를 자주 틀어주곤 했으니까. 촛불을 들고 천천히 온천을 건너가는 남자를 나는 티비 앞에 쪼그려앉아서 한참 동안 바라봤었지. 촛불이 꺼지고. 다시 촛불이 켜지고. 마침내 촛불이 손에서 떠날 때까지. 살면서 그 장면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는데. 촛불이 유유히 내 앞을 지나간다. 그러나 이번에는 홀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불을 짊어지고서 촛불이 물 위를 건넌다. 타닥타닥. 어디에서 심지가 타는 소리가 들리는가.
그리고 멍청한 눈깔의 파란 물고기가 이렇게 말했다. P Sherman Fortytwo Wallaby Way Sydney. 씨발 그래서 그게 어딘데. 대체 어디로 가는 건데.
나는 대체 어디로 가는 건데. 혹시 깨어나지 않아도 되는 건가. 정말 그래도 됩니까. 노랫소리가 들린다. 천사의 형상을 한 자장가. 포근하게 감싸는 소프라노.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 양도. 다들. 모두들. 대체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자장자장. 우리 아가. 불쌍히 여기소서.
촛불이 떨어진다. 불길이 번진다. 천사의 손이 일그러진다.
나는 엄숙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의 것들은 아무것도 비장할 필요도 장엄할 필요도 없다. 그딴 건 전부 다 쓰레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소보다는 낫지. 쓰레기가 차라리 조소보다는 나아. 죽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비웃는 음성을 듣느니 차라리 묵념이 나아. 침묵이 더 나아. 검은 장막이 쳐진 땅바닥에서 두 팔과 두 무릎으로 기어가며 눈물로 쓴 묵념. 입을 틀어막아라. 더는 소리를 내지 마. 온천은 따뜻하구나. 그래. 너는 지금 그저 조금 춥고 배가 고픈 것뿐이다. 뭔가 따뜻한 걸 먹은 다음에 이 반가운 졸음에 몸을 맡기고서 꿈결처럼 잠에 들자. 하지만 어디에서. 어디에서 나는 그럴 수 있지. 어디로 가야. 이와 같은 엄숙주의는 나를 놓아줍니까.
조소보다는 침묵이 더 나아. 언제나. 언제나 그래왔듯이. 하지만 정말로 울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니까 큰 소리로. 내 목구멍보다도 몸보다도 더 큰 소리로 쩌렁쩌렁 울고만 싶을 때에는.
내 기억은 내 체제 속에서 뻐꾸기다. 있어야 할 것을 몰아내고서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구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 아무래도 상관없다. 소모될 대로 소모된 눈깔은 텅 빈 껍데기. 어둠조차 도망친 유리알. 아무래도 상관없다.
검은 장막이 보인다. 그래. 그러니까 이제 그 뒷편에 있는 문을 좀 열어다오. 나는 숨을. 숨을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