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텔지아로부터

[일전의 편지] 이야기 열둘

by 온율

안톤 체홉은 영혼이라고 해도 결국은 분자와 원자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지. 그리고 내 약은 내 슬픔을 가릴 뿐 없애는 게 아니야. 그렇다면 기요틴에 잘려나간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어떤 응어리로 뭉쳐서 나를 쫓아올까. 대체 언제쯤 나는 그걸 마주하게 될까.

어쩌면 단 하나의 꼭짓점만 돌면 가능할 것 같다. 그것의 몸체와 부딪혀서 나 자신의 그림자를 그것과 바꿔치기하는 일 같은 건.


그러면 그때서야 나는 비로소 사라지겠지. 영혼조차 들어설 수 없는 늪의 올가미에 온몸을 내주면서.


언제부턴가 음악과 활자가 없으면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 되어버렸어. 읽지 않아도 보고 들리지 않아도 듣는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시간은 나를 집어삼키고 토해내지도 않을 것만 같아서.

나는 모래에 쌓인 먼지를 잃고 싶지 않은 것과도 비슷한 강박으로 끊임없이 내 눈과 귀를 닳게 만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는 아무것도 아닌 무언가가 될 뿐이니까.


나는 살 수 있을까. 당신이 있는 세상에서 잊지도 잊혀지지도 않는 사람이 되어갈 수 있을까. 이 지옥 같은 약들이 없이도.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게 될까.


가르쳐 줘. 내 내면의 유일함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삼 년 전 여름으로부터.


생각하는 걸 멈췄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걸 멈췄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걸 멈췄으면.

생각하는 걸 멈췄으면.

생각하는 걸 멈췄으면.

눈물이 계속 후둑거리며 떨어지는 데 지쳤어.

소리가 멈췄으면 좋겠어.

전화가 오면 무서워.

무서워.

나를 버릴 거야.

불안해.

불안해.

칼에 찔리면 어떤 기분일까.

아프지 않을 것 같다.


삼 년 전 여름으로부터.


그래. 그러니까 용기를 내고 배우라는 말인가. 그건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해오던 일인데.

그것들의 하나같은 실패가 내 병리의 근원임에도 그를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필요악이다. 트라우마라는 것은 기억이라는 거미줄의 한 꺼풀일 뿐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그러나 그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망가진다면 거미의 다리는 설 곳을 잃고야 마는 것이다. 바람이 불지 않는 시간이란 거미줄의 생애에는 허락되지 않으므로.


나풀거리는 망인의 깃발 같은 실오라기. 투명한 점막의 실체. 기억이 망각을 내다버린 잔해 속에 그 모든 것을 휘감은 채로 나를 살해하려는 내가 있다. 재건하려는 노력은 과거 너머의 과거에 짓눌려 신음조차 흘리지 못한다. 그대로 굳으려는 것은 차가운 피. 색깔 없는 비린내가 햇무리의 따사로움을 빌어 맹독으로 변해간다.


희망이라는 말을 뱉지 마.

그들이 속삭인다.

기대하는 모든 것을 가누지 못하는 육체에 동여매라.

삶이 죽음을 분출한다. 외친다.

여기서 그만. 멈춰.

그리고 아침이 되면 그들은 반대편 혈관 끝에서 다시 돋아나겠지. 멈춰. 라는 말을 죽음이 아닌 삶으로써 분출하겠지.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 하루가 하루 더 돌아온 것을 자각조차 하지 않는 오늘이라면.


삼 년 전 여름으로부터.


추신.


나는 어릴 적에 내가 당연히 커서 수학자가 될 줄 알았다. 아니면 이론물리학자나. 물론 수학과 물리학 사이의 간극은 실로 엄청나지만 의사가 대뜸 정치가로 둔갑도 하는 시대에 그 정도 탈선은 용납될 만한 것이겠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가 내 청사진의 마지노선이었다. 열 살 때부터 올림피아드니 뭐니 하는 쓰잘데없이 이름만 고상한 경시대회들을 거쳐서 마침내 열세 살에 대학부설 영재교육원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내 미래는 누가 보기에도 거기서 그대로 굳어질 것처럼 보였고 나 역시도 그걸 의심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 아이는 분명 소질이 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해서 수학이 좋았던 건 아니었다. 단지 수식에는 여자와 남자가 없어서 좋았다. 즉 어머니와 아버지가 없어서 좋았다. 또 병신도 애자도 없어서 좋았다. 애자는 또래들 사이에서 쓰이던 병신이라는 뜻의 신조어였다. 쟤 애자네. 애자새끼. 나대지 마라 애자새끼야. 어디선가 그런 말소리들이 들려올 때면 그게 나를 향해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매번 반사적으로 뒷덜미가 곤두서고 어깨가 들썩거렸다. 내 또래 애들은 그런 표현들을 그냥 자기들끼리 놀면서 장난처럼 썼다. 놀랍게도 거기엔 정말로 아무런 악의도 들어있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게 싫었다. 저 멍청한 애들은 자기가 쓰는 말이 진짜로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저렇게 실실 웃는 얼굴로 싸지르듯 써재끼는 게 좋은가. 이래서 언어는 싫다. 현실의 언어는 너무나도 싫다. 그래서 병신으로부터도 애자로부터도 그냥 귀를 닫고. 그로부터 연상되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그저 한없이 도망쳐서. 아무도 절대로 침범할 수 없도록 철저한 담장을 쌓은 수의 언어 속에 숨어들고만 싶었다. 안전하게. 현실에는 없는 언어밖에는 없는 곳으로.

해를 구하시오. 그래서 이건 내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말이었다. 여기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해를 그저 구하기만 하면 된다. 어려울 게 하나도 없었다. 내가 책상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면 불행하게도 곧장 마주치지 않을 수 없는 그 사람들이 하는 그 어떤 말들과도 다르게 해를 구하시오라고 하는 이 말은 언제나 이해가 가능한 범주에 있었다. 그저 그걸 증명하기만 하면 됐다. 얼마나 간명하고 좋은가. 그러니까 다시 고개를 숙이자. 더 고개를 숙이자. 내가 손에 쥔 이 연필 한 개만 가지고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이 언어들에만 눈길을 주자. 오직 여기만 집중하자. 밥도 먹지 말고 잠도 자지 말고. 세 시간이고 다섯 시간이고 일곱 시간이고. 집중을 멈추지 말자. 현실로 돌아가지 말자.


그러나 사실 현실로 돌아가지 않는 법 같은 건 없지.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얘가 이번 시험도 일 등 받았고 무슨 경시대회에서 상도 탔대. 이 지점에서 출발해서 다른 어른들의 호감을 사는 건 너무도 쉬웠다. 그저 여기서 약간의 연기를 보태기만 하면 됐다. 겸손하고 공손한. 그러면서도 깍듯하고 예의 바른 딱 그 정도의 몸놀림들. 실례하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더 안 챙겨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저희가 먹고 나온 설거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언젠가부터 친구네 엄마들을 무척이나 당연한 듯이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조차도 내가 이런 언어를 쓰고 있다는 것이 정말이지 놀라울 만큼.

야. 요즘 우리 엄마가 나보다도 너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맨날 너만 데려오래. 너처럼 시니컬하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은 애가 뭐가 좋다고. 대체 그렇게 얼음장 같은 눈빛으로 어른들 앞에선 사근사근 웃으면서 맞장구치는 그런 법은 어디서 배워온 거냐.

음. 글쎄. 이건 딱히 머리로 배웠다기보다는. 말하자면 생존을 위한 감각 같은 거지.

친구네 집에 놀러갈 때마다 언제나 가장 신기했던 것은 집 안 곳곳에 놓인 사진액자들이었다. 다정하게 끌어안은 얼굴들.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 때론 형제와 자매들. 웃고 있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마치 꼭 서로를 사랑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그렇게 웃고 있는. 그런 어른들과 그런 아이들.

아. 빤히 들여다봐서 미안. 그치만 정말로 신기해서. 우리집에는 이제 액자가 한 개도 없거든. 왜냐고. 음. 글쎄.

왜냐면. 아빠가 항상 그런 것들부터 집어던지니까. 잘 깨지는 것들. 와장창 소리가 크게 나고 파편이 빠르게 튀기는 것들. 그리고 내가 가장 효과적으로 두려움을 느낄 만한 것들부터. 액자. 부서진 가장자리 사이로 삐져나온 금이 간 눈빛. 그 다음엔 물이 담긴 컵. 그 다음엔 찬장의 접시들. 그 다음엔 충격으로 흔들거리는 문의 경첩. 무엇의 일부였는지 모를 유리조각은 그 사이로 데구르르 굴러가고. 다만 나는 절대로 절대로 울음을 터뜨려서는 안 돼. 그렇다고 지나치게 침착하게 굴어서도 안 돼. 그 어떤 쪽으로건 여기서 더 자극했다가는 이 다음에는 골프채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니까.

이 정도의 불확실성에 절여진 감각으로 남의집에서 착한 애인 척하는 건 그러므로 얼마나 쉬웠을지. 굳이 여기서 더 증명할 필요는 없겠지.

그러니까 이런 걸로 의젓하다느니 바르게 잘 컸다느니 그런 헛소리는 좀 집어치워줄래. 이건 그냥 뜬장에서 곰팡이 핀 구정물만 마시며 살아온 개가 어쩌다가 깨끗한 물을 주는 사람을 보고서 꼬리를 흔드는 거랑 똑같은 거니까. 고작 이 정도의 초라한 본능의 발현을 보고서 철이 일찍 들었다느니 가정에서 교육을 잘 받은 것 같다느니. 하하. 역겨워. 내가 집에서 받은 교육이라곤 골프채를 보고서 씨발 씨발 씨발 하고 터져나오는 소리를 어떻게든 다시 목구멍 속으로 밀어넣는 것밖엔 없는데. 도대체 왜. 다른 어른들에게 호감을 사는 건 이렇게 역겨울만치 쉬운데도. 왜 내 어머니와 내 아버지에게만큼은 어떻게 해도 그걸 기대할 수 없는 건데.

아. 그건 네가 병신새끼라서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아무리 일 등을 하고 또 일 등을 해도. 세상에는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으니까. 설마 그걸 몰랐다고 하진 않겠지. 너처럼 머리도 좋은 애가.

사실 알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영재 어쩌고 할 만큼 대가리가 특출난 애도 아니었다. 그저 집이 아닌 곳이 좋았던 것뿐이다. 집보다 학교가 더 좋았고 학교보다 친구네 집이 더 좋았고 친구네 집보다 학원이 더 좋았고 학원보다 독서실이 더 좋았다. 집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리고 집에 더 오래 들어가지 않아도 될수록 좋았다. 그건 사실 좋아서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두려움으로부터 숨을 곳을 찾는 것. 단지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이대로 굳혀서 만드는 그것이 정말로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내 미래가 그런 것이어도 되는 걸까.

나는 사실은 항상. 내가 있을 곳을 잘못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열일곱 살에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나는 내가 당연히 그 장례식에 가게 될 줄 알았다. 그 무렵엔 이미 아버지가 집에 없는 것에 익숙해진 지는 오래였다. 장례식장에서 몇 계절만에 만나게 될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설마 거기서도 영정사진을 집어던지진 않겠지. 에이 설마. 하지만 딱히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은 아니긴 한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불쑥 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렸다.

너 잘 생각해. 정말로 장례식장에 갈 건지.

음.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언어라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싫다.

니 외할아버지 장례 치를 때 그쪽 집안에서 한 놈이라도 왔었냐고.

아아 그랬지. 그러니까 그런 계산이구나. 그것 참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공식이네. 무엇을 얘기하려고 하는지 이해했어. 그러므로 나는 그저 거기에 따라야지. 이 계산에서 등호를 성립시키는 것도 말하자면. 생존을 위한 감각 같은 거지. 나는 그저 그 일부일 뿐이니까.

잘 생각했어.

어머니가 기뻐한다. 다행이다. 이걸로 된 거면 좋겠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어머니의 말이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럼 지금 니 애비새끼한테 전화 걸어줄 테니까. 할아버지 장례식에 가고 싶지 않다고 니 입으로 직접 말해.

아. 그렇구나. 인간은 정말이지 잔인한 생물이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나를 찾아온 아버지는 나에게 앞으로 영원히 서로 만나지 말자고 말했다. 나는 열여덟 살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은 아버지의 그 다음 말이 귓가에 마지막으로 울렸다.

그때. 그때 니가 아프게 태어나서. 니가 그렇게 태어나서 그것 때문에. 그때부터 내 인생이 전부 다 망가졌어.

그래. 결국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까지 내가 들을 수 있는 말은 이런 것이었다. 전부 다 내가 병신이라서. 그것 때문에. 그러니까 그게 십팔 년 전이었겠지. 그리고 그 십팔 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나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 그 무슨 짓을 해도 여전히 병신이고. 그래서 십팔 년을 아버지와 나는 단 한 순간도 서로가 서로에게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날 아버지는 문을 발로 걷어차긴 했지만 놀랍게도 아무것도 집어던지지는 않았다. 그날만큼은 영원히라는 그 언어의 무게가 그것을 대신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그것은 말하자면 깃털 같은 것이었다. 참을 수 없이. 너무도 가벼운.

그래. 이걸로 된 거면 좋겠다. 이제 뭐든 아무래도 좋으니까. 어차피 처음부터 있을 곳은 없었어야 했다는 걸 이젠 알고 있으니까. 정말로 그 어떤 감정도 들지 않는다. 아무것도 생각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러나 괜찮다.

그로부터 다시 십 년이 지났다. 영원히에서 단지 십 년이 지났다. 나는 올해로 스물여덟 살이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도 여전히 그 어디에도 내가 있을 곳이 없다.


비로소 있을 곳을 찾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좋긴 하겠다. 다만 오늘날을 돌아보면 과거의 그 시간들이 무섭도록 아득하고. 그래서 때때로 실제로는 한 번도 제대로 가져보지도 못한 것들을 너무 많이 잃은 것만 같은 기분에 쉽게 휩싸이고는 한다. 어릴 적 머릿속에 한가득 욱여넣었던 그 휘황찬란한 지식들은 뭐에 쫓기기라도 하듯 재빠르게 휘발되어 모조리 사라지고 없고. 그것들의 잔상 내지는 편린이 희뿌연 향수로나마 남아서 잠시라도 환기를 시켜주면 조금 나을 것도 같은데. 그마저도 이제는 일말의 것조차 없다. 그러나 꼭 그와 같은 시기에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배웠던 것들은 뼛속 깊이 남아서 시시각각 모든 순간에 덧입혀진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전히 내 등 뒤에 누가 서있는 걸 싫어한다. 등 뒤에 서있는 그 누군가가 망치를 들었을지 골프채를 들었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감각만큼은 몸에 지독하게 배어들어서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떠나지 않으니까. 그래서 여전히 항상 어디에서 무얼 하건 지나치게 주변을 살피고 눈치를 보고. 여전히 사소한 충격에도 반사적으로 뒷덜미가 움츠러들고 목구멍에는 뭔가가 걸린 것만 같아서 숨이 멈추고. 여전히 누군가가 병신새끼야. 하며 나를 불러세울 것 같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다만 내가 있을 곳이 없다.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내가 누구인지조차 가끔은 정말로 알지 못한다.

다만 때때로 내 눈앞에 다른 부모와 자식들의 모습이 비칠 때면. 그러니까 내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게 벌써 십 년도 더 전의 일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서로에게 없는 존재로 살다가 죽을 것이라는 그 사실이 불현듯 상기될 때면. 비로소 문득 생각하곤 한다. 만일 내가 병신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그들이 원했던 대로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더라면. 그래서 그들이 나로부터 자유로웠더라면. 아버지는 내 할아버지로부터는 사랑받는 아이가 될 수 있었을까. 처음부터 나만 그 어느 곳에도 없었더라면 그 부모와 그 자식만큼은 서로를 품을 수 있었을까. 라고.

우매한 수학도 출신인 나는 이것을 대체 어떤 미사여구로 치장할 수 있는 건지 알지 못한다. 이러한 언어가 갖는 무거움을 어떻게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것인지도. 마찬가지로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더 허덕거리며 좀스럽게 구는 대신에 단지 한 문장만을 간명하게 쓰도록 하겠다. Q. E. D.

해를 구할 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