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라지듯이 살아지기를

[일전의 편지] 이야기 열다섯

by 온율

시간이란 그런 거니까. 고통을 관통하면서도 그렇기에 더더욱 보상은 더 값질 거라고 믿게 되는. 그런 실낱 같은 해방감.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아직도 지켜나가는 시간임을. 우리 모두 모르지는 않는 것이다. 다만 그럴 힘이 얼마나 고갈됐는가에 모든 게 달려 있을 뿐.


생각한다. 나에게 불필요한 건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이 아니라 미래를 파멸로 이끌고자 하는 결심이었던 건 아닐까.

그러나 꼭 그만큼 오늘은 불안하고 내일은 뿌옇게 가려져서 보이지 않고 다음 달과 그 다음 달은 마치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아. 알고 싶어. 그런 시간들이라도 모이고 모이면 동백을 꽃피울 수 있는 건지. 지금은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어린 새싹도 여름의 비와 가을의 바람을 거치면 겨울의 눈꽃과 함께 봉우리를 감싸안을 수 있게 될지.

그렇게 나의 시간도 흘러가고 흘러가다가 어느 굽은 계절에 마주쳐 온몸을 흩뿌리는 민들레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지천을 누리는 자유로움을 껴안고서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도 강한 힘을 가진 한 겹의 홀씨로.


삼 년 전 여름으로부터.


그토록 밝은 햇볕 아래에서 그 노래를 듣는 것 역시 처음이었어. 그리고 며칠 전에 바다에 빠트려서 카메라가 망가진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어떤 사진으로도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파도의 생동을 옮겨 담을 수는 없을 테니까.

한여름 한낮의 한가운데서 두 팔은 뜨거웠지만 머리는 더위를 느낄 수 없었어. 오직 파도의 철썩임과 노래의 음성만이 수평선과 섬 사이의 잃어진 결속을 메우려는 것 같았지. 그리고 노래의 마지막 소절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그것들이 보였다. 파도가 아닌 파도가 실어오는 빛들이. 빛들의 움직임과 진정한 운율의 힘줄이.


하지만 늘 그렇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의 춥기만 한 에어컨과 시끄러운 라디오에 작은 설렘은 또 시들어버리고. 겨우 도착한 집에서는 방울토마토들을 따고 수확량을 기록하고 방을 청소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또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오면서 벌써 약을 먹을 시간이 됐다는 걸 잽싸게도 알아차리지. 그리고 약을 먹고 기타를 좀 치다 보면 밤이 되고. 깊어지는 밤의 침묵 속에서 오늘만은 악몽을 꾸지 않게 해달라고 누군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빌면서 힘겨운 잠에 들겠지.


그러면 또 하루가 지나간다. 어제의 하루와도 다르지 않은 그런 하루가.


삼 년 전 여름으로부터.


새 우는 소리가 들린다. 또 새벽부터 눈이 떠졌어. 창문 너머로 멀리 있는 가로등의 불빛이 햇무리처럼 둥글게 어른거리는 게 느껴져. 그리고 내 방 안의 잠겨진 모서리들의 봉인이 풀려나기 시작하고. 오늘도 그런 아침이 찾아온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삼 년 전 여름으로부터.


추신.


마음이 가물어. 눈물이 그에 가닿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했던 말이 있었다. 너는 서너 살 때도 한 번도 울거나 떼쓰거나 징징거린 적이 없었다고. 항상 얌전하고 조용해서 보는 사람들마다 애가 너무 의젓하다고 그랬다고. 그 무렵의 내가 보낸 시간을 알지 못했으면서 어떻게 그걸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지 좀 놀랍기는 했지만 굳이 토를 달지는 않았다. 서너 살 때 나를 맡아서 키워준 사람들의 얼굴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두어살 때 나를 맡아서 키워준 사람들의 얼굴 역시도. 젖먹이 때 나를 맡아서 키워준 사람들의 얼굴 역시도. 아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나를 친자식처럼 여기며 키웠다고 했다. 이건 뭐랄까. 어떤 측면에서는 진실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내가 그들 중 몇몇을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로 지칭했었다는 사실만은 지금도 어렴풋하게나마 떠오르곤 하니까. 다만 나는 그로 인하여 울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혼자 달려가다가 넘어져 손바닥이 까졌던 그 순간의 기억이 뚜렷하게 남아있기로는 가장 최초의 기억이다. 나는 다섯 살이었다. 옅은 주홍색의 피가 비어지는 걸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울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그 다음에 든 생각은 그 누구에게도 이걸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른들의 눈을 피해 선반 아래의 구급상자를 꺼내서 손바닥에 대일밴드를 붙였다. 그리고 옷소매를 손가락 끝까지 내리며 상처가 다 아물기 전까지는 절대로 주먹 쥔 손을 펴지 않기로 다짐했다. 아무도 내가 다친 걸 알아서는 안 되니까. 왜 그래야만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실제로도 그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 내가 다쳤다는 걸 안 사람은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성공이었다. 그런 것은 차라리 성공하지 말았어야 했었다고 돌이켜보게 된 것은 다만 먼 훗날의 일이었다.

그리고 나이를 더 먹어서 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언제나 지나치게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었다. 인상이 차갑다는 말. 얼음장 같다는 말. 냉소적이고 염세적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때는 고작 아홉 살이었다. 남들 앞에서 웃기는 잘 웃었다. 하지만 정말로 웃고 싶어서 웃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울고 싶을 때는 여전히 울지 않았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무리에서도 중심에 서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나 이따금씩 또래 아이들은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두려워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월감과 패배감을 동시에 느꼈다. 나는 저 애들보다 강하다는 우월감. 그러나 그 강함은 내가 선택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패배감이었다. 또 이따금씩 어른들은 나와 눈을 마주치면 뭔가 크게 잘못된 걸 보기라도 한 듯이 눈빛이 흔들렸다. 그럴 때마다 내가 느낀 것은. 단지 죄책감과 환멸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나와는 다른 이들을. 즉 나약함이 허락되는 환경에서 자란 이들을 지독히도 동경하고 있었다. 어른이든 아이든 가릴 것 없이. 그런 건 다 티가 나는 법이니까. 그러나 단 한 순간도 감히 부러워한 적은 없다. 나에게는 부러움조차 허락되지 않는 너무 머나먼 곳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동경이란 그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듯이 하는 것이다. 결코 서로 간섭당할 수 없는 두 세계에서. 좁혀지지 않을 평행 가도를 달리며.


유년의 시절 미처 다 토하지 못한 울음의 응어리가 마침내 빗장을 풀어 그것이 터져나왔을 때. 나는 이제야말로 진짜 어른스러워야 할 성년이 되어 있었다. 정말로 뭔가가 잘못되었다. 순서가. 순서가 잘못되었다. 이런 건 좀 몸이 작을 때 겪었다면 좋았을 텐데. 어른스럽지 않아도 좋았을 그런 시기가 내게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제껏 울고 싶을 때 마음 놓고 울어본 적도 웃고 싶을 때 마음 놓고 웃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순서가 꼬였고. 고장이 나버렸다. 가뜩이나 순탄치 못한 삶에 제대로 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진실 앞에 직면했을 때 나는 스무 살이 훌쩍 넘긴 몸뚱어리를 가지고서도 저 아득한 너머로부터 분출되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목이 터져라 울었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었다. 울다가 지쳐서 머릿속이 안개로 가득해져. 두 발로 딛고 일어서려다가도 균형을 잃고 바닥에 나뒹굴어. 그 바닥에서도 어깨와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더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가 귀에 빙빙 도는 것을 느끼며. 처절하게. 혹독하게 울었다. 분명 이렇게까지 울 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도 사소하게 시작된 눈물조차 도무지 멈출 수가 없어서. 공황장애 약을 먹고. 스스로를 해칠 궁리를 하고. 그리고 다시 울고. 단지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해서도 꼬여 있는 것을 풀어낼 수 없었다. 고장이 난 것을 고칠 수도 없었다. 그게 안타까워서 다시 울었다.

그때의 이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자기연민. 글쎄. 아무렇게나 불러도 좋다. 그러나 나는 사랑받고 자란 사람들이 얘기하는 연민의 정의를 믿지 않는다. 아무것도 잃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상실의 정의를 믿지 않듯이.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어른스러운 아이였던 적이 없다. 울지 않는 아이다운 아이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그럼에도 흘렀다. 울지 않는 아이에서 울지 않을 수 없는 어른으로. 껍데기만 바뀌었을 뿐인가. 뭐랄까. 이것은 정말이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겠다.

어쨌거나 살아야만 하는 삶이기에. 그리고 나를 팔아야만 하는 삶이기에. 나를 조각조각 쪼개고 나누어 그나마 타인에게도 그런대로 받아들여질 만한 파편 한 조각을 가면처럼 뒤집어쓰고서 오늘을 살아간다. 상처가 난 사람. 특히나 마음에 상처가 난 사람은 세상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없다. 어릴 적에 그랬듯이 지금도 나는 그 사실만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듯 숨을 끌며 살아온 데에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단지 내가 항상 틀렸던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였다. 내가 어떻게 해도 옳게 될 수 없다는 것쯤은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이의를 제기할 욕심 따윈 없으니까. 그럼에도 내 존재가. 내 삶이. 항상 틀리기만 했던 건 아니라고.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누구에게. 그 누구에게 나는 이런 말을 전할 수 있을까.

살면서 많은 것을 바란 적은 없다고 믿었다. 보통의. 그냥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게 인간으로서 결여된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끝없이 되뇌이게 하는 그 숱한 밤과 새벽이 있고. 나 스스로에 대하여 진술하고 해명하고 논증하고 논박하며 공고히 펼쳐놓은 그 철옹석 같은 장벽 속을 너무도 쉽게 침범하고 들어오는 칠흑 같은 불안이 있고. 이윽고 또 하루가 뜬눈으로 뒤척인 밤과 새벽을 지나 찬란한 아침 해로 밝아오는 순간이 있어서. 도대체가 불행을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일은 얼마나 산 넘어 산인가. 하고 생각하며 그만 또 눈물의 행적을 그리게 되는. 그런 나날들이 다만 있었다.

가로막혀 부서지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 나도 살고 싶다. 나도 살고 싶다. 나도 살고 싶다. 이 말이 부디. 나도 살고 싶었다로 마무리되지 않기를.

부디 이 눈물도. 그저 솟아났듯이 사그라지기를. 슬픈 일이 많아서 가물게 된 마음에도 사라지기 전에 싹을 틔우는 것이 있기를. 그렇게 살아지기를.

항상 틀렸던 것이 아니듯 항상 울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노라고. 진심을 다하여 웃은 일도 그 언젠가에는 있기도 했었노라고. 그렇게 되새기며 살아지기를. 그래서 오늘보다 조금만 더. 살고 싶어지는 내일이기를.

이 모든 걸 더는 숨지 않고서도 바라게 될 날이. 내게도 올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다만 이것을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