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가 너무 잘 휘는 사람의 쓸데 있는 하루
저는 철들기 싫은 노래쟁이입니다.
그래서인지 몸에도 쓸데없는 옵션이 하나 있습니다.
엄지손가락이 뒤쪽으로 아주 많이 휘어집니다.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새끼손가락을 펴고
엄지만 뒤로 꺾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새 같았습니다.
정확히는 날지는 못할 것 같은데
자기 나름의 사정은 있어 보이는 새였습니다.
여기서 멈췄으면 좋았을 텐데
눈을 그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손목에는 나뭇가지와 잎을 그렸습니다.
새는 역시 나무에 있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손 하나를 완성해 놓고 정원으로 나갔습니다.
정원의 나무 사이에 제 손을 슬쩍 끼워 넣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무 의미는 없지만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누가 보면 이 나이에 뭐 하는 짓인가 싶겠지만
저는 이런 게 좋습니다.
생각 없이 시작해서 쓸데없이 끝나는 일.
철들었다면
손가락이 휘는 각도를 의학적으로 검색했을지도 모르고
철들었다면
손에 눈을 그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철들기 싫은 노래쟁이이고
엄지는 잘 휘고
새는 손에서 태어났고
나무는 마침 거기 있었습니다.
그날도 이렇게 별 쓸모는 없지만
꽤 기분 좋은 하루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2021년 7월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