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태운 채 만취 질주…결혼 앞둔 30대 참변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가벼워져서는 안 되는 것들

by 박온유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는 참변을 볼 때마다 나는 늘 같은 지점에서 멈춰 서게 된다.
왜 우리는 술에 취했다는 이유를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는가.


심신 미약.
특히 술에 의한 심신 미약은
마치 책임을 반으로 나누는 마법의 단어처럼 작동한다.
그러나 나는 이 논리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술을 마실 것인가 말 것인가는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서 스스로 내린 결정이다.
술을 마신 뒤 운전대를 잡을 것인가 역시 마찬가지다.
의식의 끈을 놓은 것은 사고 이후가 아니라
그 선을 넘기로 한 바로 그 순간이다.


흔히 이런 반론이 따라온다.
“술에 취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라고.
맞다.
그래서 더 문제가 된다.

운전은 습관의 영역이기도 하다.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눈이 감기지 않는 한
차선을 유지하고 핸들을 돌리는 행위 자체는
어느 정도 자동화되어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음주운전은 더 위험하다.


자동화된 행동은 가능하지만
돌발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대처 능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보행자, 오토바이, 갑작스러운 정체,
예측 불가능한 변수 앞에서
술에 취한 운전자는 이미 운전자가 아니다.
그저 질주하는 괴물일 뿐이다.


중요한 건 이 사실을 운전자 자신도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다.
술에 취하면 판단이 흐려지고 반응이 늦어지고 통제가 어려워진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을 넘는다.
운전대를 잡는다.
그리고 사고가 나면 심신 미약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건 모순이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게 될 것을 알면서 그 상태를 선택한 사람에게
왜 통제 불능을 이유로 책임을 덜어주는가.


심신 미약은 예측 불가능한 질병이나
의식의 상실에서 논의되어야 할 개념이다.
술은 다르다.
술은 준비된 선택이고
경고가 충분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다.


음주운전은 실수가 아니라 결정의 연쇄다.
마시기로 한 결정,
더 마시기로 한 결정,
운전해도 되겠다고 판단한 결정,
그리고 그 결과로 누군가의 삶이 끝난다.


이번 사건에서도 피해자는 집으로 돌아가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있었고
어둡다며 잠시 함께 달려주겠다고 말하던 그 짧은 순간에 삶은 끝났다.

이 죽음을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벌어진 사고”로 부르는 순간,
우리는 또 하나의 면죄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같은 참변은 반복된다. 시발 ㅠㅠ


나는 술에 의한 심신 미약을 강력하게 재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음주운전에 있어서는 감형의 사유가 아니라 가중의 사유가 되어야 한다.

통제력을 잃을 것을 알면서 위험한 선택을 한 사람에게
사회는 분명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


그 선택의 결과는 어떤 이유로도 가벼워질 수 없다고.

이건 복수의 문제가 아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다.
그리고 더 이상 사람의 귀가가 우연에 맡겨지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윤리다.


고인의 명복을 온마음으로 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 분들의 안녕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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