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뺄셈, 탐욕의 덧셈

189만 원과 1,500조 원의 부조리

by 박온유

대한민국은 지금 거대한 모순의 실험실이다.

2025년 최저임금이 1만 30원으로 결정되었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세전 209만 원 남짓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떼어가는 4대 보험과 세금을 제하고 나면, 노동자의 손에 쥐어지는 실수령액은 약 189만 원이다.

생존과탐욕.jpg

이 숫자는 단순한 급여 명세서의 숫자가 아니다. 이것은 '생존의 불가능성'을 증명하는 성적표다.

이미 3년 전인 2022년, 통계청이 발표한 비혼 단신 근로자의 월평균 실태 생계비는 241만 원이었다.


241만 원이 필요한 삶에 189만 원을 던져주는 사회.

이 -52만 원의 공백은 무엇으로 메워야 하는가? 밥을 굶어야 하는가, 아프지 말아야 하는가, 아니면 미래를 위한 저축을 포기하고 영원히 노동의 굴레에 갇혀야 하는가? 시스템은 개인에게 "어떻게 살라는 것인가?"라는 절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아 삶을 조여오는데, 시스템이 정한 임금의 하한선은 생존의 하한선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가난'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개인의 존엄을 구조적으로 파괴하는 '윤리적 재앙'이다.


그렇다면 그 사라진 부(富)는 어디로 흘러갔는가?

개인의 지갑이 말라 비틀어지는 동안, 기업의 금고는 터져나갈 듯 불어났다.

10대 재벌을 포함한 대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은 1,527조 원을 넘어섰다. 한국 GDP의 70%에 육박하고, 전체 가계부채와 맞먹는 이 천문학적인 돈은 기업의 곳간에 겹겹이 쌓여 흐르지 않고 있다.

기업은 늘 "경영 위기"와 "불확실성"을 핑계로 임금 인상을 억제해왔다. 하지만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매출 증가율보다 유보금 증가율이 몇 배나 높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들은 위기를 대비한 것이 아니라, 위기를 조장하여 이윤을 독식해 온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원리'가 아니라 '시스템의 갑질'이다.

금융기관과 대기업은 '개인의 돈'을 기반으로 덩치를 불려왔다.

은행은 고객의 예금으로 막대한 이자 장사를 하고, 기업은 노동자의 시간을 헐값에 사서 유보금을 쌓았다. "지네 돈도 아닌데" 그들은 부의 주인 행세를 하며, 정작 부를 생산한 주체인 개인에게는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을 던져주고 있다.

부의 낙수효과는 허상이었음이 증명되었다.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고, 흐르지 않는 돈은 경제의 동맥경화를 일으킨다. 1,500조 원이라는 거대한 댐이 터지지 않는 한, 189만 원의 가뭄은 해결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구속'이 아닌 '보완'을, '자비'가 아닌 '정의'를 요구해야 한다.

더 이상 기업의 선의나 시장의 자정 작용에 기대할 시간은 없다. 국가는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강제적인 윤리를 개입시켜야 한다.


첫째, 기업과 금융기관의 수익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들이 개인의 희생 위에서 얼마나 많은 부를 축적했는지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둘째, 초과 이윤의 사회적 환원과 임금 현실화를 강제해야 한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 강화든, 최저임금의 산정 기준을 '물가 상승률'과 '실질 생계비'에 연동시키는 법적 장치든, 부가 아래로 흐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파이프라인을 뚫어야 한다.


189만 원과 1,500조 원. 이 극단적인 숫자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무너져가는 개인의 삶을 구하고 시스템의 붕괴를 막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이 불합리한 뺄셈의 삶을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집단 이성은 이제 정당한 몫의 덧셈을 요구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지네 돈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