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족한 것은 내가 가장 잘 안다.

창비신인시인상 도전기

by 박온유


내가 부족한 것은 내가 가장 잘 안다.


그럼에도 발버둥 친다.


그저께 나는 "창비" 공모전의 시 부문에 공모 신청을 했다. 최소 5편의 시를 보내야 했고 나는 내가 쓴 시들 중 고르고 골라(나는 시를 위한 시를 쓰지 않는다. 곡을 위한 시의 형태를 취할 뿐이고 이것을 시라고 할뿐)

5편의 시를 프린트하고 공모 서류에 내용을 입력 후

우편 접수를 했다.


기간은 5월까지.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내 수준을 알기에.

하지만 이 또한 하나의 도전이며 삶에 대한 나의 몸부림이다.


사단조(Gm) -박온유


파리한 생명이 힘겹게 흐르는

하얗게 뻗은 창백한 땅.

그곳에 금을 긋는다.


지그시 새겨지는 선명한 금,

선을 따라 번지는 선홍빛 솔.

가만히 바라보는 차가운 날.

다시 이어지는 깊은 금,

검붉게 퍼지는 시플렛.

지켜보는 붉은 날.

깊고 빠르게, 또 그어진 금,

따뜻하게 흘러내리는 레.


핏빛으로 물든 땅,

안개처럼 퍼지는 숨결.

그제야 완성되는

사단조(死短調).


.


압화(壓花) -박온유


가장 예쁘게 핀 그때,

내 목은 꺾이고.


빛 한 조각 누리기도 전에

어둠에 갇혔다.


얼굴을 들기도 전에

온통 짓밟히고.


푸른 바람에 향을 실어 보내기도 전에

내 숨은 막혀버렸다.


싱그러움은 말라가고,

모든 향기는 누런 책장에 갇혔다.


모든 시작과 끝은 대지에 있음에도

내 바랜 주검은 네 손에 쥐어져,


너의 텅 빈 눈을

흐리게 채운다.


.


소매가(所梅歌) - 한글 시 -박온유


어제 동지가 지났으니

내 너를 찾아 나서리라.


시방은 찬바람 드세니

너를 차마 보겠냐 마는.


맘 깊이 너를 품었으니

내 발 구르지 않을쏘냐.


석 자 이름이 소소매라.


내 널 보지 못한다 한들

어찌 네게 낯 가릴쏘냐.


일평생 너를 그렸으니

이 심정이야 가실쏘냐.


소매가(所梅歌) - 한시


昨夜冬至過 (작야동지과)

今朝尋爾行 (금조심이행)


寒風猶烈烈 (한풍유렬렬)

不忍見君顔 (불인견군안)


深心藏爾影 (심심장이영)

踏雪亦何妨 (답설역하방)


三尺名所梅 (삼척명소매)


縱然不得見 (종연부득견)

豈敢避君羞 (기가피군수)


一生寫君意 (일생사군의)

此情終不移 (차정종불이)


.


종일 방안에만 있어 -박온유


너도, 나도

우리는 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찾아오고,

어두운 방이

한없이 옭아매면.


그런대로

내 혼도, 내 살도

내버려 둔다.


악의로 가득 찬

지독히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바라본다.


결국엔 사그러들고,

의식의 저편으로 넘어가

알 수 없는 슬픔이

하나 더 늘어난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 고개를 들지

우리 둘, 누구도 모르지만.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방을 나서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종일 방안에만 있다.


.


인형 -박온유


예쁜 얼굴,

귀여운 웃음,

고운 옷을 입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나.


모두가 날 보며

"저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사랑받고 싶다" 말하지.


하지만 너 아니?


나는 웃는 것밖에 할 수 없고,

입혀준 옷만 입고,

데려다 준 그곳에서

놓인 그대로 존재한다는 걸.


그의 말이 내 말이 되고,

그녀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그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고,

그녀의 행동이 내가 놓인 모습.


어느 하나도,

한 순간도,

나 아닌 나.


그게 바로,

네가 예쁘게 바라보는

나라는 걸.


창비.jpg


2025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