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이어진 아픔, 그럼에도 굽히지 않는 사유
나는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아파왔다.
오늘도 역시 육체는 예고 없이 무너져 위경련과 구토 속에 나를 침대에 묶어두었다. 하지만 내가 이 아픔을 먼저 고백하는 이유는, 나의 연약함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사유의 정직함'을 말하기 위해서다.
극심한 위경련과 구토는 나를 수시로 의식 저편으로 날려버리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내 몸에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상처들이 새겨져 있다. 다리에 든 푸른 멍과 무릎의 붉은 상처들은 내가 고통 속에 쓰러지며 세상과 부딪힌 정직한 생존의 기록이다.
하지만 나를 진정으로 무너뜨린 것은 몸의 상처보다 차가운 사회의 시선이었다.
나는 지금의 회사에서 12년을 근무했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다. 매일 아침 정직하게 내 자리를 지켰고, 실력으로 내 가치를 증명해 왔다.
그러나 지난 9월 한 달간의 병가는 나의 모든 커리어를 신기루처럼 만들었다. 12년의 성실함과 쌓아온 실력은 무시된 채, 오직 '출근 여부'만이 나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었다.
차장이라는 직함과 380만 원의 급여는 한순간에 사라졌고, 나는 '건강 리스크'라는 낙인이 찍힌 채 일반 사원으로 강등되었다.
회사는 나를 '개밥에 도토리'처럼 취급하며 외면했고, 이제 내 손에 남은 숫자는 세후 189만 원이라는 최저 생존의 무게뿐이다.
나의 실력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나의 아픔을 리스크로만 계산하는 이 뼈대 없는 사회에서, 나는 다시금 사유의 뼈대를 곧게 세운다.
내가 꿈꾸는 세상은 아픈 사람이 죄인이 되지 않는 사회다.
자신의 헌신이 육체의 아픔으로 부정당하지 않은 세상.
북유럽의 나라들처럼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기반이 마련되고, 최저 시급이라는 숫자 놀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영위할 수 있는 '251만 원'의 생활 임금이 당연한 기본권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
그런 든든한 사회적 뼈대가 있었다면, 나의 성실함은 배신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아프든, 내 커리어가 바닥을 쳤든 상관없이 내가 기록하는 문장들은 언제나 정직해야 한다. 이것이 무너진 현실 위에서 내가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식이자 마지막 자존심이다.
글을 알아보고 소중한 흔적을 남겨 준 그 따뜻한 시선들에 진심으로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아닌
열사람의 한걸음으로 세상이 바꿔지길 기도한다.
온유야 사랑해 박온유 정규1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