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태(勤怠)의 오역

대한민국은 왜 출석부로 존엄을 단죄하는가

by 박온유

무릎에 새겨진 푸른 멍과 붉은 상처는 고통 속에서도 삶을 붙들었던 정직한 생존의 기록이다.

그러나 12년간 단 한 번의 지각도 없이 자리를 지킨 노동자의 성실함은, 단 30일의 병가라는 ‘불경죄’ 앞에 처참히 무너졌다. 차장의 직함은 박탈되었고, 세후 189만 원이라는 숫자는 존엄을 유린하는 낙인이 되었다.

이것은 경영이 아니라, 인간의 생체 리듬을 실적으로 환산하는 잔혹한 ‘숫자 놀음’이다.




단어조차 배신한 시대: 근태(勤怠)는 출결이 아니다


우리는 '근태'라는 단어를 오독하고 있다. 부지런할 근(勤)은 맡은 바 임무에 마음을 다해 힘쓰는 정성을 뜻하며, 게으를 태(怠)는 스스로 책임감을 놓아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즉, 근태의 본질은 직무를 대하는 ‘영혼의 성실함’과 ‘사유의 정직함’에 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기업들은 이 숭고한 단어를 오로지 ‘출결’이라는 저급한 수치로 치환한다.

12년 동안 단 한 번의 지각도 없이 실력을 증명해 온 숙련 노동자의 근(勤)은, 단 한 달의 육체적 공백 앞에서 ‘태(怠)’로 매도당했다.

영혼 없는 육체가 정해진 시간에 의자에 박혀 있는 것만을 성실이라 부르는 이 천박한 해석이 한 사람의 삶을 낭떠러지로 밀어 넣고 있다.




OECD의 미아, 대한민국의 ‘야만적 출석부 경영’


대한민국은 OECD 가입국 중 ‘근태=출결’이라는 공식에 집착하는 거의 유일한 국가다.


선진 경영의 궤도에 오른 국가들에게 근태란 ‘직무에 임하는 태도와 결과의 질’을 의미한다. 그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해 효율을 떨어뜨리는 ‘프레젠티즘’을 기업의 막대한 손실이자 관리 실패로 규정한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19세기 산업혁명기 공장의 유령에 사로잡혀 있다.

노동자를 인적 자산이 아닌,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소모품으로 간주하며 ‘건강 리스크’를 곧 ‘숙련도의 소멸’로 몰아세운다.

12년의 헌신이 단 한 달의 부재로 증발한다는 논리는 자본주의의 합리성마저 상실한 비이성적 폭력이다.




지적 담론을 넘어 ‘징벌적 입법’으로


이것은 단순히 기업 문화의 개선을 촉구하며 끝낼 지적 유희가 아니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정조준한 입법적 결단이 필요하다.


첫째, ‘병가 보복 금지법’의 명문화: 질병 휴직을 이유로 한 강등, 감봉, 인사상 불 익을 ‘부당 노동 행위’로 규정하고, 위반 기업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성과 중심 평가제’의 법적 표준화: 출결 중심의 낙후된 평가 지표를 폐기하고, 직무 특성에 맞는 합리적 성과 지표(KPI) 도입을 법적 가이드라인으로 강제해야 한다.


셋째, ‘생활임금’의 보편적 보장: 최저임금이라는 허울 좋은 방패 뒤에 숨어 노동자의 고혈을 짜내는 행태를 멈춰야 한다. 재활 중인 노동자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최소한의 권리인 ‘생활임금(2025년 기준 월 254만 원)’ 수준의 소득 보전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사유의 뼈대로 세우는 새로운 법질서


회사가 깎아버린 것은 급여가 아니라 한 인간의 역사다.

세후 189만 원이라는 숫자로 한 사람의 12년 전문성을 재단하는 사회는 ‘뼈대 없는 사회’ 일뿐이다.

무너진 현실 위에서 우리가 세워야 할 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부조리한 시스템의 숨통을 조이는 날카로운 법적 가시여야 한다.


아픈 사람이 죄인이 되지 않는 세상은 오직 무능한 기업 문화를 법의 심판대에 세울 때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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