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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Dec 26. 2018

인도, 뭄바이 라이프

인도에서 맞이하는 아이들의 첫 겨울방학, 그 첫 날의 기억


‘아직 어둑한걸 보니 새벽이겠지?

한달 전 부터 미라클 모닝을 시작한 난 아침 5시면 저절로 눈이 떠지곤 했다 . 그런데 시계를 보니 벌써 7시다. 이런, 해가 이렇게 짧아진걸 미쳐 눈치채지 못했다. 방학 첫 날 부터 늦잠을 자버렸다. 아이들이 깨기전에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이럴줄 알았으면 어제 일찍 자지 말껄.......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날 수 있기에 저녁 9시부터 잠을 자기 시작했다. 결국, 밤 새 잠을 실 컷 자버렸다  


주섬주섬 일어나 차가운 물로 세수를 했다. 잠시 기도를 하고, 노트북을 켰다.

노트북은 남편의 업무용 노트북이다. 그래서 남편이 쓰지 않는 시간에 후다닥 써야한다. 오늘은 주말이기에 약간 마음의 여유가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깨기 전에 한 줄이라도 더 써야 한다. 아이들이 깨서

“엄마~ 배고파.”

하는 즉시, 난 엄마모드로 전환해야한다.


방학이라고 아이들이 실컷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아침을 대충 차려주었다. 왠지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다. 콧물이 나고, 재채기가 난다. 머리도 지끈거리고, 눈도 아프다. 40이 되기위한 워밍업인가, 운동을 하라는 신호인가.......

사실 운동에 대한 경고등이 깜빡인지 꽤 됬다. 못본척 지나치고 있을 뿐이다.


어젯밤에 씻지 않고 쌓아 둔 설거지를 했다.

“야!”

굵고 짧은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인가 하고 설거지 하던 손놀림을 멈추고 후다닥 거실로 뛰어 나갔다.

아들아이가  거실 테이블 위로 넘어 다니다가 물병을 넘어뜨렸다. 그런데  뚜껑이 없었다. 물은 처참하게 거실 바닦으로 흘러 나와 영역표시를 하고 있었다. 한소리 하려다 며칠 전에 세운 새해 계획이었던 “가벼운 입이 되지 않기”위해 꾹 참는다. 수건을 가져다가 물을 닦았다.


설거지를 다시 시작했다  

‘앗!’

이번엔 내 입에서 소리가 났다. 과일칼을 씻다가 새끼 손가락을 살짝 스쳤는데 빨간피가 흘러 나왔다. 다시 한번 설거지를 멈추고 옆에 있던 휴지로 손가락을 돌돌 말아 거실로 나갔다. 지혈을 하며 앉아 있는데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남편은 쇼파에 길게 누워 유투브를 보고 있고, 아이들은 아침을 먹는지, 마는지, 둘이서 장난만 치고 있다. 내 손가락에 피가 흐르는지 마는지 관심도 없다. 순간 서운함이 울컥 올라왔다. 손가락에 반창고를 붙이고 고무장갑을 끼고 다시 설거지를 한다. 갑자기 뜨거운것이 올라왔다. 하지만 설거지 하던 손은 멈추지 않는다. 내 얼굴은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되었다.


“우리 오늘 영화보러 가자. 세 자매 뭉치자. 영화보고 저녁까지 먹자고~”

“부럽다.... 난 혼자 영화 봤는데......”

“너도 한국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나도 언니들이랑 놀고 싶다.”


언니들과의 카톡 때문일까,

손가락의 피를 봤기 때문일까,

괜찮냐는 말 한마디 안해준 서운함 때문이었을까?

소리죽여 울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해외에서 살다보면 이렇게 우울함이 찾아온다. 그 우울함은 절대 혼자 찾아오지 않는다. 눈물이라는 친구와 부정적인 마음이라는 동생을 데리고 온다. 오늘 함께온 동생은

“내가 왜 여기 이러고 있나.......”

라는 부정적인 마음이다.

하지만 이제 낯설지 않은, 언제 찾아와도 반갑게 울어주고, 쉬원하게 “잘가”하고 보내줄 수 있는 익숙한 손님이다.


집안 청소를 하고 아이들에게 한글과 산수 숙제를 내주었다. 숙제를 끝내면 영상을 틀어줄 참이다. 유투브로 프렌치 영상을 찾는데 다 이상한 것들 뿐이다. 겨우 영어 영상을 찾아 틀어주려는데, 집에 있던 큰 모니터가 깨져있다.

방글라데시에서 이사 오면서 깨졌나보다. 여태껏 몰랐다.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나 보험 처리도 할 수 없는데.... 할 수 없이 태블릿을 틀어주었다.

잠시 아이들이 영상을 보는 동안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켰다. 이상하게 충전이 안되어 있다. 분명 콘센트를 꽂아 두었는데........ 노트북이 꺼져버렸다. 큰일이다. 오늘 하루종일 글을 쓰려고 했던 계획이 틀어져서가 아니다. 남편 업무용 노트북인데 충전이 안되고 꺼져버렸으니, 뭐라고 변명을 해야할지....... 머리가 갑자기 깜깜한 밤이 되었다. 케이블을 다시 연결 해보고, 파워를 눌러봐도 노트북은 켜지지 않았다. 사실대로 이실직고 해야 할 판이다.

이제 뭘 하지...... 그리다 만 젠탱글을 그리려 펜을 들었다.  올 초부터 그리기 시작한 젠탱글 실력이 꽤 좋아졌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 딱 좋은 예술영역다.

한땀 한땀 그리고 있는데, 아뿔싸.........

새끼손가락에 감아놓은 밴드에 물이 촉촉하게 스며들어가 있었다. 그  밴드 때문에 한 부분이 번져 버렸다. 이런.......


펜을 던져 놓고 침대에 풀썩 누웠다. 하.......


뭄바이에 온지 이제 5개월, 한국과는 다르게 하루 하루가 천천히 흘러간다. 갈 곳도 없고, 먹을거리도 없는 이곳에서 3주 동안의 겨울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방학 첫날 부터 모든게 엉망징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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