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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Feb 24. 2019

이별이라는 경험

이별은 아무리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애들아, 갑자기 이런 소식을 전해서 정말 미안해. 우리 일정이 앞당겨졌어. 3월 4일 즈음에 프랑스로 가야 한대. 나도 너무 당황스러워. 티켓팅을 해 봐야 알겠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도 혼란스러워."

"뭐라고? 농담하는 거야? 이렇게 갑자기?"

"정말이야? 며칠 안 남았잖아. 어떡하면 좋아. 그럼 오늘이 마고 마지막 날인 거야?"

"오 마이 갓~~ 당장 우리 만날 날짜를 잡아야겠다."





2월 중간 방학을 하는 날, 멜로디는 갑작스러운 소식을 전해왔다. 회사에서 갑자기 귀국 일정을 앞당긴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멜로디가 3월 말이나 4월 초에 떠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방학 때 만나서 함께 놀기로 했었다. 멜로디와 가장 친한 친구 민은 일주일 전에 베트남으로 휴가를 떠나고 없었다. 번번은 방학을 하는 바로 오늘 오후, 델리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고, 난 며칠 뒤에 근처 해변의 리조트로 휴가를 떠날 계획이었다. 갑작스러운 멜로디의 말에 우리 모두는 혼란에 빠졌다. 멜로디가 떠나기 전에 우리 모두가 만날 수 있는 날을 잡아야 했다. 하지만 민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멜로디와 민은 서로 베스트 프렌드이다.



 처음 뭄바이 프랑스 학교에 갔을 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에서 어색하게 서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처음 보는 나에게 선뜻 말을 걸지 않았다. 나 역시도 그들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두 아이들에게 괜찮다며 환하게 웃어주었지만, 정작 내 심장은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감추며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준 사람이 바로 멜로디였다. 그녀는 동양 사람인 나를 보자마자 매우 반가워했다.


그동안 프랑스 학교에 동양 사람이 없어서 매우 외로웠다며 가뭄에 단비를 만나듯, 나를 반겨 주었다.

멜로디가 둘째 임신 전, 함께 일식집에 가서 밥을 먹으며 그동안 뭄바이에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열변을 토했다. 프랑스인 남편은 프랑스 사람들 만나는 것을 싫어했고, 필리핀 사람들은 멜로디를 살짝 질투해 어느 곳에도 마음을 두지 못했다고 한다.

프랑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프랑스어 공부를 해보지 않겠냐는 그녀의 말에,

"난 지금 영어가 더 급해. 내가 일 년 전에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거든. 그리고 일 년 동안 혼자 공부했어. 지금은 말은 할 수 있지만, 잘하지는 못해."

자신감 없는 이런 나의 말에 멜로디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는 말을 네가 이해하고, 네가 하는 말을 내가 이해하잖아. 그럼 된 거야. 뭐가 더 필요해?"

 

그녀의 이 말 한마디는 나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한국 사람인 나에게는 문법을 틀리게 말하거나, 단어를 잘 못 선택해서 말하는 것이 조금 창피한 일이었다. 그런데 멜로디는 서로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한다면, 문법이 조금 틀리고, 어휘가 정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우리들만의 의사소통이다.(아마도 우리가 모두 비영어권이기 때문에 좀 더 너그러운 것 같다.)


그 뒤로 난, 멜로디와 말할 때, 내가 말을 잘 못해도, 단어가 생각이 안 나도 창피해하지 않게 되었다. 얼굴이 한 겹 더 두꺼워졌다.


멜로디 덕분에 '민'과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친구였던 유까를 만나게 되었고, 나랑 비슷한 시기에 뭄바이 생활을 시작한 번번과도 친구가 되었다.


우리들은 모이면 제각각의 영어를 구사한다. 유까는 일본식 억양의 영어로, 민은 베트남 억양의 언어로, 나는 한국식 영어로, 번번은 홍콩식 영어로, 멜로디는 필리핀식 영어로.......

좀 서툴게 말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대충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먹는다. 가장 영어가 유창한 번번은 내 귀에 쏙쏙 들어오게 말해준다.




해외에 살다 보면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한국에 있었다면 평생 만나보지 못했을 사람들이다. 나라도, 도시도, 살아온 환경도 모두 다른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된다.


해외에 있으면 전라도, 경상도를 따지지 않는다. 그저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로 친구가 된다. 나라는 다르지만 같은 피부색을 가졌다는 이유로 친구가 된다.


7년 동안 해외 생활을 하면서 참 많은 이별을 경험했다. 남편의 임기가 끝나 귀국을 하는 사람들과 눈물의 이별을 하고, 나 또한 먼 지역으로 이사를 하면서 친했던 사람들과 이별을 했다.

이미 겪어 보아서 새로울 것도 없는 그 감정이, 이별을 대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감정으로 되살아난다.



아이들을 픽업하러 학교에 갔다. 교실 문 앞에서 옹기종이 모여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쪽에서 멜로디가 부른 배를 내밀고 뒤뚱거리며 들어왔다. 그녀가 가까이 와 서로 손을 잡고 인사를 하는 사이, 이미 서로의 눈이 붉어졌다. 거의 동시에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다음 주에 다 같이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마고의 마지막 날이기에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마고는 친구들과 마지막 사진을 찍기 싫다며 나가 버렸다. 번번이 찍어준 사진에는 주인공 마고가 빠져있었다. 마고는 프랑스로 여행을 갔다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마고랑 결혼하겠다던 알렉은 이제 어쩌지?




우리는 모두 이곳에 평생 살지 않는다. 다들 언젠가는 떠난다. 나 또한 몇 달 뒤면 이곳을 떠나 새로운 도시로 가야 한다.

" 쏘냐, 언제 가는지 정해졌니?"

"아니, 아직, 아마 여름방학일 거야."

"오, 제발 끝까지 정해지지 말기를......."

번번은 날 볼 때마다 물어본다. 그리고 매번 같은 대답을 듣는다.

"너도 3년 뒤에 떠날 거잖아......."



우리들은 만나고 헤어진다.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이별을 하겠지. 우리가 해외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수 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을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몇 몇의 사람들과만 연락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바쁜 일상으로 인해 잊혀져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겠지.......


이것이 가장 슬프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친구가 되는 과정이 결코 쉽게 이루어 지는것이 아닌데, 내가 해외에 사는 동안에는 항상 이별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이별이라는 경험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언젠가는 익숙한 이 감정에 쿨 하게 반응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마도, 이 세상과 이별하게 되는 그 날까지도 난 쿨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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