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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Feb 22. 2019

인도에서 차를 샀다.

7년 만에 차가 생긴 사연

우리의 첫 차는 결혼 전 남편이 산 소형 프라이드였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연애를 하다가 차가 있으니 좋기도 했지만 뭔가 아쉽기도 했다.


 난 뚜벅이 연애가 좋았다.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남자 친구가 날 보호해준다는 액션으로  뒤에서 힘을 꽉 쥐고 버티는 모습이 좋았다. 그때마다 팔에 드러나는 근육도 멋있어 보였다.

버스를 타고 같은 자리에 앉아서 손을 잡고 대화하는 것도 좋았다. 할머니나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남자 친구의 모습이 흐뭇했다.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산 소형 프라이드는 남자 친구의 애마가 되었다. 주말마다 날 보러 안산에서 서울 서쪽 끝으로 달려오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가 운전을 하면 마음이 불안 불안했다. 그의 운전 솜씨를 못 믿은 것은 아니었다.  초보들의 실수를 가끔 하고, 길을 잘 몰라 네비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딴 길로 가버리기도 했지만, 운전 실력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가 운전면허증을 '네팔'에서 땄기에 마음이 불안했다.


내 남편, 그 당시에는 남자 친구였던 그는 네팔에서 운전면허를 땄다. 그것도 한국에 비하면 아주 간단하게 땄다. 물론 연습을 하긴 했겠지만.......

그때는 네팔에서 딴 운전면허를 한국에서 등록하면 한국에서도 면허증이 나왔었다.(아마 지금은 안 되는 것 같다.)


그 소형 프라이드는 지금 고흥 친정집에 아직도 살아있다. 7년 전, 한국을 떠나 방글라데시로 가면서 반값에 친정엄마에게 팔고 갔다.

엄마는 논과 밭만 있는 시골에서 그 차 덕분에 매우 잘 나가는 신여성이 되셨다. 그 차를 몰고 읍내에 나가 장을 보고 오다가,  동네 어르신들이 보이면  태우고 내려오신다. 면사무소의 여성 모임에 참여하고, 함께 벚꽃놀이, 단풍 구경을 다니신다. 엄마에게 차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차를 몰고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신다. 아마 타지에 살고 있는 막내딸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 계실 것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차가 필요 없었다. 회사에서 제공되는 차를 사용했다. 남편 업무로 쓰던 차를 한 번씩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운전기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차를 쓰지 못하면 릭샤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기도 했다.


인도에 오면서 차를 사려고 했었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아이들 학교가 가까워서 굳이 차가 필요 없었고, 남편도 출퇴근할 때 우버택시를 이용했다.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차를 관리하고 운전기사를 다루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차 사는 것을 나중으로 미뤘다.


아이들은 우리만 차가 없고 항상 택시를 타고 다니는 것이 조금 싫었던 것 같다.

"왜 우리는 차가 없어?"

"엄마, 누구네 차 진짜 좋더라."

"난 BMW가 멋지더라."

라며 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린 지금 차가 필요 없어서 안 사는 거야. 차가 필요해지면 살 거야."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우리가 차 살 돈이 없어서 사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지안이가 진지하게 말을 했다.

"엄마, 우리 장난감 같은 거 사주지 말고 돈을 모아. 그래서 차를 사자. 나도 용돈을 모을게."


중고차를 살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중으로 미뤘다. 몇 달 후면 뭄바이를 떠나 델리로 이사를 가야 하기에 이사를 가서 사자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아는 분이 차를 가져가라고 하신다. 정말 저렴한 금액이었다. 뭔가 하자가 있는 거 아닌지 의심했지만, 그분은 차를 매우 잘 아시는 분으로 부품 하나하나를 한국에서 공수해 손수 새것으로 바꾸셨다고 한다. 문제는 그분이 인도의 남쪽 끝에 살고 계셨고, 차도 거기에 있었다.


남편은 몇 번 고민을 하더니, 그 차를 사야겠다고 결정을 해버렸다. 그리고 며칠 전, 남쪽으로 향했다.


비행기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그지역은 뭄바이와는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한다. 작은 소도시이고 일 년 내내 기온이 비슷해 살기가 매우 좋다고 한다. 거기서 뭄바이까지 차로 오려면 16시간이 걸린다.

벵갈로루 ~우리집까지 거리



남편은 지인과 함께 직접 운전해 이틀에 걸쳐 차를 가져왔다. 중간 지점의 어느 이름 모를 도시에서 하룻밤을 묵고, 둘이 번갈아 가며 운전을 했다.

" 경치 좋아?"

"뭘 상상하는 거야? 허허벌판이야."

"왜 사서 고생을 하고 그래."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그러지. 왜 그러겠어?"

"자기 힘드니까 그러지. 조심히 와."


집에 돌아온 남편은 녹초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두 아이들은 신이 났다.

"와~ 차 엄청 좋다.;

"엄마, BMW 같아."

"아니야, 소나타야."

"엄마, 그런데 새 차가 아니네?. 오빠 이거 새 차 아니야. 봐봐 앞에 새똥 묻었어."

소은이는 앞 유리창에 현명하게 찍힌 새똥을 발견하고는 새 차가 아닌 중고차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예리한 녀석.......


새 차이든, 중고 차이든 아이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 소유의 차가 생긴 것에 잔뜩 흥분을 했다.

천진난만하게 웃고 떠들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순수하게 보이다 못해 살짝 창피했다. 옆에 서있던 경비 아저씨도 그런 아이들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렇게 단돈 백만 원으로 차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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