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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Feb 19. 2019

밤 12시의 사치

컵라면과 김치

누가 시킨 것도 아닌 일에 몰두하다 보니 깊은 밤이 되었다. 아이들을 재우다 같이 잠이 들곤 했었는데, 오늘은 밤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워 두 눈을 부릅뜨고 참았다. 내일은 인도의 국경일이라 학교가 쉬기 때문에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다. 이런 날은 정말이지 올빼미가 되어 밤을 꼴딱 지새우고 싶은 심정이다.



저녁 9시면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 분명히 9시 전부터 책을 읽어주기 시작하지만, 아이들은 10시가 다 되어 잠이 든다. 날마다 읽기 독립을 시켜야지, 다짐해 보지만, 이미 잠자리 습관으로 깊숙이 박혀버린 이 가시를 제거하기가 힘들다. 더욱이 둘째는 태어나자마자부터 잠자리 책 읽기가 시작되었으니(타의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평생 동안의 잠자리 의식을 하루라도 건너뛰려 하면 울고 불고 난리가 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누워있다 어느새 같이 잠이 든다. 일찍 잤더니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미라클 모닝이 시작되었다.


거의 두 달 동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꼼지락꼼지락 글도 쓰고, 책도 보고, 감사 일기도 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일찍 자도 늦게 일어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겨우 시계 알람 소리에 놀래 일어나 부랴부랴 도시락을 싸고 아침을 준비하면 이미 아침 7시인 것이다.


나의 미라클 모닝은 두 달 만에 끝나버렸다.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시작하면 되겠지만, 한껏 게을러진 엉덩이를 일으키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이제 불혹의 나이가 되었으니 잠도 줄어들었나 보다고 생각했던 것은 큰 착각이었다. 잠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단지 새해 다짐에 부응하기 위해 두 달 바짝 긴장의 끈을 잡고 있었던 듯싶다. 이제 그 긴장이 다 풀려 버렸다.  일찍 자도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



오늘처럼 다음날 아침에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날엔 예전처럼 올빼미가 되어본다. 밤 새 꼼지락꼼지락 그림을 그리고, sns에 새로 그린 그림을 올리고, 블로그를 기웃거리고, 글을 쓴다.


 pen drawing @sonya


그런데 저녁을 걸러서 인지 왠지 배가 출출하다. 오늘처럼 남편이 출장을 간 날에는 아이들에게 대충 저녁을 차려주고 정작 나는 밥을 먹지 않는다. 겸사겸사 나잇살을 빼기 위한 목적도 있고, 혼자 뭘 먹기 싫어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스멀스멀 허기가 올라온다. 순간, 낮에 보았던 브런치 글이 생각났다.


“죽고 싶으면 라면을 먹어라.”

죽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라면 생각이 났다.

한국에서는 가장 흔하고 싼 게 라면이지만, 내가 사는 뭄바이에는 한국 라면이 귀하디 귀하다. 이주에 한번 라면 5 봉지를 배달시켜 아껴서 먹는다. 한국의 라면 값보다 거의 2배 정도 하니, 결코 싼 음식이 아니다. 특히 컵라면은 봉지라면 보다 조금 더 비싸다. 고민 고민하다 부엌 서랍을 열어 보니, 컵라면이 딱 하나 남아있다. 며칠 전 한국에서 출장 온 어느 분이 주었다며 컵라면 몇 개와 초코파이를 남편이 들고 왔었다. 그 컵라면이 남아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물을 끓였다. 컵라면 봉지를 뜯어 수프를 넣으면서 ‘북한댁’ 작가님의 라면공장에서 일했던 에피소드를 생각했다.

‘귀하게 만들어진 수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지.’


그렇게 밤 12시에 컵라면과 김치를 먹었다.

남편은 출장 가고 없고, 아이들은 꿈나라로 가고 없다. 컵라면 하나로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배도 부르고, 이대로 자면....... 얼굴이 달덩이가 되어 있겠지?

달덩이 좀 되면 어때, 지금 충분히 행복한걸.’


이렇게 밤 12시의 사치를 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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