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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Feb 26. 2019

아이의 시간

조금 느리지만, 자라고 있습니다.


일주일 전, 아이의 앞니가 빠졌다. 모든 아이가 겪는 일이지만, 내 첫째 아이, 지안이에게는 조금 특별한 경험이었다. 대부분 아랫니가 먼저 빠진 후 윗니가 빠진다고 한다. 하지만 지안이는 가운데 윗니가 가장 먼저 빠졌다. 그것도 9살이 되어서야 첫니가 빠진 것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7살에 이가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안이는 7살이던 1년 내내 이가 흔들리지 않았다.

“이가 늦게 빠지는 게 더 좋아요. 그래야 치아가 덜 썩을 거 아니에요?”

다들 그렇게 말했지만, 8살이 되어서도 흔들리지 않는 아이의 이를 보며 괜히 엄마인 내 마음만 흔들거렸다.

‘이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겠지? 성장이 너무 느린 거 아니야?’

고작 이 빠지는 일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나 자신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다.


“3학년 때 앞니가 빠지면 아이들이 얼마나 놀리는지 몰라. 이가 늦게 빠져도 놀림감이 된대.”

지난여름, 잠시 한국에 갔을 때 만난 사촌 동생은 이가 하나도 빠지지 않은 지안이를 보며 말했다. 같은 또래인 자기 아들은 이미 이가 3개나 빠졌다면서.......

순간,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지안이는 아기 때부터 다른 아이들의 신체 발달과 조금 달랐다. 아랫니가 먼저 나오고, 앉기 전에 기었다. 허리 발달이 좀 느렸던지 앉지 못하고 잘 넘어졌다. 잘 앉지도 못하던 아이는 잡고 서는 것을 먼저 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앉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아랫니는 아주 살짝만 흔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위에 가운뎃니가 빠졌다. 그다음은 바로 옆의 윗니가 될 참이다. 지금 가장 많이 흔들리고 있다.

이렇게 지안이의 신체 발달은 항상 예상을 빗나간다.




지안이는 물을 무서워했다. 워낙 겁이 많고 예민한 아이인지라 아기 때부터 높이 올라가는 것도 무서워하고 물도 무서워하고, 처음 보는 것은 다 무서워했다. 놀이터 미끄럼틀에 올라갈 수 있게 된 것도 6살이 되어서 가능했다.

아이는 최근까지도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것을 무서워했다. 물이 무서워 무릎까지 오는 어린이 풀장에서만 놀거나 아예 수영장 근처에 가는 것을 싫어하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이 잠수를 하고, 암 튜브를 벗어던지고 물개처럼 수영을 할 때 지안이는 멀찌감치 의자에 앉아서 구경만 했다. 자주 수영장에 가지 않아서, 또는 엄마나 아빠가 함께 수영을 하지 않아서라고들 했지만, 난 아직 때가 안 됐다는 것을 알았다. 언젠가는 수영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지안이의 신체나 학습, 정서 발달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엄마인 나이기 때문에 남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아이의 때를 잘 기다려 줘야 하는 사람도 엄마인 나였다.(솔직히 아이가 다른 아이들이 다 하는 것을 못할 때는 많이 답답했다. 특히 한글을 떼야할 때 가장 힘들었다.)


9살이 되어서야 첫니가 빠진 아이를 보며 지안이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드디어 오늘, 지안이가 수영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암 튜브를 하고서도 물이 무서워 아빠 어깨에 매달려 수영도 멋도 아닌, 그저 물에 들어갔다가 몸만 적시고 나오던 아이가 드디어 스스로 물장구를 치며 수영을 했다. 물론 암 튜브를 하고, 스위밍 보드를 붙들고 있긴 했지만, 혼자 물속으로 절대 들어가지도 않던 아이가 스스로 들어갔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 물론, 이것을 위해 아이의 손을 잡아 주고, 배를 잡아주며 수영 연습을 시킨 나의 지대한 노력이 있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했던가? 지안이는 스스로 수영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잔뜩 고무되었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 조금 추워진 날씨에도 수영을 계속하려 했다. 결국, 이제 그만 들어가자는 말을 몇 번이나 한 후에야 물 밖으로 나왔다.


“엄마, 혼자 수영할 수 있게 가르쳐 줘서 고맙습니다. 수영이 너무 재밌어요.”

지안이는 숙소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앞니를 보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 꼭 영구 같아.”



아이들마다 각자의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이 빠른 아이들도 있고 느린 아이들도 있고, 평균으로 흐르는 아이들도 있다. 그 시간이 빨리 가도, 느리게 가도 결국, 어른이 되는 시간은 모두 같다. 그저 아이의 시간이 멈추지 않게, 고장 나지 않게 옆에서 지켜 봐주고, 지지해 주는 것이 바로 엄마들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시곗바늘이 엉키지 않게, 아이의 시계 배터리가 닳아버리지 않게, 그리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서.......



어떻게 아이의 시간을 알 수 있을까? 아마도 아이의 엄마라면, 내 아이의 시간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내 아이의 시간도, 속도도 모르겠다면 아이와의 관계를 한번 되짚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도 이제야 아이의 시간을 인정하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내 아이의 시간은 조금 느리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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