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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n 09. 2024

행복에 대해 자주 생각해요

밀라노에서 편지를 보냅니다

To. 대구.


작가님의 편지를 읽으며 작가님의 우울의 깊이를 가늠해 봤어요. 그게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일지 잘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우리의 책, 첫 챕터를 떠올렸습니다. 바로 작가님께서 쓰신 첫 부분이지요.

"암막 커튼까지 쳐져 빛이라곤 손톱만큼도 볼 수 없던 방 안에서 별안간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문장의 마지막은 "나를 찾는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로 끝나지요.



어쩌면 우울이라는 감정은 그 깊이만 다를 뿐 항상 우리 안에 잔잔히 흐르고 있는 냇물 같아요. 그저 발만 담글 수 있을 만큼 찰방찰방 대며 지낼 때도 있고, 허리만큼 차오른 물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황할 때도 있고요. 물이 턱밑까지 찼을 땐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하지요.


저와 아이들은 수영을 못합니다. 수영을 배우려면 수영강습에 등록하고 배워야 하는데, 그게 너무 싫다는 아이들을 무직정 데리고 수영장에 갔어요. 유튜브로 봤던 물에 뜨는 법, 음~ 파~ 숨 쉬는 법 등을 해보았지요. 쉽진 않았지만 되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수영을 할 수 있느냐고요?

아니요, 4월에 시작했는데 수영장을 자주 못 가다 보니 아직도 수영을 마스터하지 못했습니다.

빨리 배울 수 있는 방법을 두고 이렇게 느리고, 오래 걸리는 방법을 택하다니…. 참 어처구니없죠.

주위 친구들은 "수영 클래스"에 등록시키면 금방 할 거라고 조언해요. 하지만 제 아이들은 무조건 싫다고만 합니다. 느리더라도 엄마와 함께 하고 싶다고요.

뭐가 옳은 방법일까요?


조금 더 빠른 방법은 있지만, 옳은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저희는 수영을 빨리 배울 수 있는 방법 대신에 함께 하는 시간과 경험을 샀다고 생각해요. 사실 7월부터 9월 초까지 여름방학인데 한국도 안 가고, 할 일도 없어서 날마다 수영장에 갈 생각입니다.


수영 이야기를 꺼낸 건, 수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호흡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에요.

우울의 냇물에 빠졌을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거든요. 음~파~, 음~파~ 리듬애 맞춰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그 호흡이 우울과 함께 지낼 때도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예전엔 그게 글쓰기였다면 지금은 무엇일까요?


저는 밀라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물론 방글라데시와 인도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긴 했는데요, 이곳 밀라노만큼 다양한 곳은 없는 것 같아요. 1980년대에 밀라노로 유학을 오신 분들도 계시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인지도 모를 때 이곳에 와서 아이를 낳고 키운 사람들도 있어요. 어제 만난 분은 30대 초반이었는데요, 여기서 태어난 한인 2세였지요.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는 고생을 겪으면서도 이곳에 여전히 남아 살고 있더라고요.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수록 더 많이 묻고 질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들을수록 저는 겸손해져요.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글을 처음 썼을 때는 나에 대해 쓰는 일이 너무 즐거웠어요. 사소한 나의 일상, 나의 생각, 가족의 이야기들을 주저리주저리 쓰고, 공감받으면 그렇게 좋더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공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요.

내가 무심코 쓴 자랑거리가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요즘, 슬로우리딩으로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을 읽고 있어요.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고통"이라고 말하는 염세주의자로 유명하죠. 그런데 그의 아포리즘을 읽을수록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싶어 몸부림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끊임없이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토로하거든요. 그는 이렇게 말해요.


"무심히 지나쳐버리는 일상의 모든 가혹한 현재를 소중히 여겨라.
오늘은 단 한 번뿐이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이 내일 다시 찾아오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일 역시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또 하루에 불과하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철학자의 말을 통해 읽으니 더욱 선명하게 새겨진 기분이었어요.

 

그는 또 말합니다. 행복이란 남들보다 재산이 많거나, 유명하거나, 지휘가 높거나, 명성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 남들보다 덜 불행한 사람이라고요.

덜 불행하기 위해서는 몸이 건강해야 한다고 말해요. 몸의 아픈 순간, 행복감은 사라진다고요.


이 단순한 문장을 읽은 후,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지금 몸이 건강한 것이 참 감사해지더라고요. 그리고 저녁 10시에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되었어요.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전 행복한 사람 같더라고요.



오늘은 중학교 1학년인 아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교회에 가면서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등학교만 가면 행복할 것 같은데 더 힘들고, 대학교만 가면 행복할 것 같은데 더 힘들고, 군대만 다녀오면 행복할 것 같은데 더 힘들고, 취직만 하면 행복할 것 같은데 더 힘들고..... 뭔가 이루면 행복할 거라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어."

"그래서 넌 지금 행복해?"

"뭐.... 이 정도면 행복하지?"


아이들과 이런 대화가 되는 지금이 참 행복합니다.

물론 대화가 안 통하던 어린 시절엔 그 나름대로의 귀여움이 있었지만요.

이제는 아이들 따라다니며 치우지 않아도 되고, 목욕을 시켜주지 않아도 되고, 잠을 재워주지 않아도 돼서 좋아요. 물론 아이들이 돌아가며 설거지를 해주니 더 좋습니다.

(물론 퇴근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널브러져 있는 한 사람을 보면 한숨이 나오긴 하지만, 눈을 감고, 귀를 닫습니다. "나는 큰 사람이다~ "하고 외치면서요.)


작가님,

아이들이 빨리 크는 게 아쉬울 거예요. 그런데 좀 큰 아이들과 함께 일상을 누리는 것도 참 좋아요. 그러니 가는 시간을 너무 아까워하지 마시길 바라요.


다시 오지 않을 오늘, 작가님께서 많이 행복하시기를 바라요.

제 답장이 너무  늦진 않았기를 바라며,

밀라노에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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