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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10. 2024

[밀라노에사는사람들]고등학교대신 탈학교를 선택한 예나씨

[밀라노에 사는 사람들] 네 번째 인터뷰. 

밀라노로 유학온 사람들은 대부분 예술과 관련된 사람들이다.  성악 전공자가 가장 많고 패션, 미술 전공자들이 그 뒤를 잊는다. 나이가 어리고 싱글인 사람이 보이면 다들 그런 분야일 거라 짐작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의례 하는 질문이 있다. 

"어느 파트 전공이에요?" 

 즉, 소프라노인지 메조소프라노인지, 테너인지, 바리톤인지 묻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사람은 이런 일반적인 범주에 속하지 않는 젊은 청년이다. 밀라노 소재 대학원에서 호텔경영을 전공하고, 몇 달 전 한국의 모 기업 인턴으로 취업한 원예나 씨다. 호텔경영으로 유학생활을 한 것도 흥미로웠지만, 그녀의 또 다른 이력이 유독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건 바로,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수능을 보지 않고 대학에 갔다"는 학력이었다. 10대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녀의 교육 환경이 어떠했을지 몹시 궁금했다. 그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녀와 만나기로 한 날은 6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5시였다. 그녀가 미리 예약해 놓은 long song book cafe는 밀라노 중심지에 위치해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려다 남편이 함께 동행해 주어 편하게 차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심지에 가까워질수록 길이 막혔다. 그날은 바로, "동성애 지지 퍼레이드"가 있는 날이었는데 시위로 인해 중심지역의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몫이었다. 약속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돌고, 돌아 목적지에 다다랐지만 무지개 깃발을 들고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복장으로 찻길을 막고 행진하는 그들을 보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것이 역차별은 아닐까? 동성애를 지지한다면서 굳이 저런 퍼포먼스를 하는 것일까? 그건 오히려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더 강화시키는 행위가 아닐까? 이제부터 코끼리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머릿속에서 계속 코끼리가 떠오르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입장을 바꿔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길을 막고 일반적이지 않은 퍼포먼스를 한다면, 그것도 그들의 자유이니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리는 비를 피해 약속 장소인 long song book cafe로 뛰어 들어갔다. 


빼곡히 꽂힌 책장 사이에 예나 씨가 보였다. 환하게 반겨주는 그녀의 모습에서 20대의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long song book cafe




선량 :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예나 : 안녕하세요. 저는 28살, 원예나입니다. 밀라노에 온 지는 아직 3년이 되지 않았고요. 밀라노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 모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선량 : 지금은 인턴이지만, 정직원으로 전환될 수 있는 건가요?


예나 : 다른 회사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희  회사는 이탈리아 현지인 보다 한국인 현지채용 직원의 정규직 전환이 좀 더 빠른 편이에요.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요. 이탈리아 사람들 입장에선 역차별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선량 : 이탈리아에서는 정규직 전환이 쉽지 않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대부분 인턴으로 시작해서 계약직으로 전환이 되고, 계약이 끝나면 바이바이~ 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게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면 정규직 혜택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한 가지 예로 정규직이 되면 무단결근을 해도 함부로 자를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프다고 몇 달씩 병가를 쓰기도 하고요.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요. 아마 그런 영향으로 한국인과 이탈리안에 대한 처우가 다를 수 있겠네요. 


예나 :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이탈리아 현지 직원들은 퇴근시간 땡 하면 모두 퇴근하거든요. 야근을 하는 사람은 한국 사람들뿐이에요. 야근에 대한 필요성이나 이해에 있어서도 문화가 많이 른 것 같아요. 


선량 : 밀라노에는 어떻게 오셨나요? 


예나 : 대학원 2년 과정으로 왔어요. 사실 표면적 이유는 대학원이지만, 그 안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어요. 저희 고모 가족이 이탈리아에 오래 살고 있었거든요. 이 대학원을 선택한 이유도 사촌 언니가 거기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코로나 기간에 언니가 저에게 유학에 대한 정보를 줬고, 한번 와서 공부해 보라고 했어요.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선량 : 어렸을 적에 이곳에 잠시 살았다고 했는데, 언제 어떻게 사신 거예요? 


예나 :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고요, 제가 돌 때 밀라노로 왔어요. 그리고 6년을 살았어요. 그런데 그때 IMF를 겪으면서 고모네 가족과 저희 가족이 합쳐서 함께 살기도 했어요. 

저희 가족이 처음 이탈리아로 나올 때 아버지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요. 

"6년 안에 이곳에서의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다."

기한을 미리 정하고 오신 거죠.  그런데 6년이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까 아버지가 결심을 하셨어요. 그때 제가 6살, 오빠가 8살이었는데요, 저희가 더 크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온 거죠. 


선량 :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나요? 


예나 :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좋았던 분위기는 남아있어요. 내가 뭘 했다는 기억은 없지만요, 누가 나한테 좋은 말을 해주었던 기억, 뭔가 행복했던 기억이 남아 있어요. 


선량 : 그런 좋은 기억이 남아있으니 다시 올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 이제 홈스쿨링 이야기를 해볼까요? 홈스쿨링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예나 : 제가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를 안 갔으니까, 17살 때부터 스무 살 때까지 한 거네요. 그런데 저는 제가 백 퍼센트 홈스쿨링이라고 말하기 좀 애매해요. 홈스쿨링이라고 하면 집에서 부모님과 교육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학교만 벗어났을 뿐이지, 야외 활동도 굉장히 많이 하고 학원도 다녔거든요. 그래서 저는 "탈학교"라고 말하고 싶어요. 


선량 : 아, 그렇군요. 저는 정규 교육과정에서 벗어나면 모두 홈스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군요.

고등학교를 가지 않고 학교 밖 공부를 선택한 이유가 몹시 궁금해요. 쉽지 않은 결정이니까요. 


예나 : 사실 중학교 영향이 컸어요. 제가 중학교를 기독교 대안학교인 "두레자연중학교"를 나왔거든요. 중학교가 특성화 중학교라서 아이들이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어요. 졸업할 때쯤 친구들이 다들 고민을 하는데요, 유학을 가는 친구들도 많고, 다른 대안학교를 가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선량 : 일반 중학교와는 분위기가 굉장히 다른데요?


예나 : 네.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범위가 많이 달랐죠. 그러다 보니 저희 부모님도 저에게 어디로 가고 싶은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었죠. 그런데 진짜 고등학교를 정해야 할 때 부모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예나야, 고등학교를 안 가는 건 어떠니?"

저는 너무 당황했어요. 고등학교는 당연히 가는 걸로 생각했는데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요.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보았죠. 

"엄마, 아빠가 봤을 때 너의 이런 성격과 성향이 고등학교를 가는 대신 그 기간에 네가 하고 싶은 걸 한다면 네 삶에 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당연히 엄마, 아빠가 널 보호해 줄 거야. 한번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 


선량 : 세상에나.... 부모님께서 먼저 제안을 하신 거군요 


예나 : 네. 그때 중학교 선생님과 진학상담을 하잖아요. 그런데 선생님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예나 네가 한번 생각해 볼 만한 옵션인 것 같아. 너 같은 친구라면 고등학교를 안 가도 기 기회를 삼아 너를 더욱 성장시킬 수 있을 것 같아." 


선량 : 부모님도 선생님도 예나 씨가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추천하신 거겠죠?


예나 : 그러신 것 같아요. 저희 오빠에게는 그런 걸 추천한 적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데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무척 당황했죠. 어른들이 저에게서 무언가를 보셨나 봐요. 


선량 : 부모님과 선생님의 권유로 고등학교를 안 가기로 선택을 하신 거군요. 어찌 보면 예나 씨 삶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끼친 분들이네요. 그 결정을 한 후 어떠셨어요?


예나 : 저는 중학교 때 공부를 굉장히 못했어요. 저희 중학교는 한 학년에 딱 스무 명씩 학생을 뽑아요. 글짓기와 면접으로 남학생 12명, 여학생 8명을 뽑죠. 그래서 존교생이 60명이에요. 저는 그 20등 중에서 18등? 19등? 을 했어요. 


선량 : 와, 완전 반전인데요? 부모님과 선생님께서 탈학교를 권유했다고 해서 공부를 엄청 잘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예나 : 사실 저는 공부에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ㅎㅎㅎㅎ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도 공부에 크게 관심이 없으니까 이제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탈학교를 시작하기 전에 부모님과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를 했어요. 부모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네가 하고 싶은 거, 좋아하는 걸 하겠지만 그래도 시간을 그냥 허비할 순 없으니, 계획을 크게 세워보자. 넌 뭘 하고 싶어? 네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엄마, 아빠가 도와줄게. 그리고 정보를 찾아 줄게. 너게 뭘 하고 싶은지 한번 생각해 봐. 

그리고 네 인생에 무기가 될 만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봐. 넌 아직 어리고 잘 모르니까 여러 가지 배우는 것에 의의를 둘 수 있지만,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무기 정도는 하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그게 국어든, 수학이든 말이야. 그게 뭔지 한번 생각해 봐." 

그때 생각한 게 영어였어요. 그나마 영어는 좀 재밌었거든요. 그래서 영어 학원을 다녔어요. 문법 이런 게 아니라 영어 회화 학원을 다녔어요. 그리고 영어 중심으로 활동을 했어요. 저는 좀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데요, 야외에서 부딪혀보는 걸 좋아해요. 그때 청소년 기자단이 많았는데 그런 활동도 하고, NGO 단체에서 봉사활동도 하며 지냈어요. 


선량 : 고등학생이 NGO를 알기 쉽지 않은데요?


예나 : 그때 한참 한비야 씨가 유명했거든요. 그분을 찾아보다가 NGO를 알게 되었죠. 그와 관련된 곳 중에 세이브 더 칠드런이라는 아동구호단체가 있었는데요, 거기서 공부방 선생님으로 일 년 반정도 활동했어요. 


선량 : 정말 주도적인 청소년이었네요! 


예나 : 맞아요. 혼자서 막 찾아다녔어요. 서울이라는 지리적 이점도 있었고요.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선량 : 아무리 주도적인 딸이라고 해도 웬만한 부모님은 그렇게 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예나 씨 부모님은 어떠셨나요? 


예나 : 사실, 저희 엄마는 오빠가 초등학생 때까지 극성 엄마 성향이 있었어요. 오빠를 공부시키려고 엄청 애를 쓰셨죠. 근데 저희 오빠는 완전히 예체능인이거든요. 앉아 있는 걸 너무 힘들어했어요. 그런 엄마와 오빠가 너무 부딪힌 거예요. 그때 엄마가 탈모까지 왔었어요. 그걸 본 아빠가 "그만하면 됐다, 우리 애들은 그런 애들이 아닌 것 같다. 그냥 놓아주자!"라고 하셨어요.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고 하신 거죠. 


선량 : 아하,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군요. 자녀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예나 씨 부모님은 내려놓는 걸 잘하신 것 같군요. 저도 내려놔야 하는데.... 


홈스쿨링 할 때 가장 좋았던 점과 가장 힘들었던 점은 뭘까요?


예나 : 되게 사소하지만, 좋았던 것이 있어요. 단점일 수도 있는데요, 바로 시간활용이에요. 학교에 다닌다면 딱딱 정해진 스케줄이 있잖아요. 종 치면 시작하고, 또 종 치면 끝나고. 그런데 저는 그런 스케줄이 없으니까 제 스스로 만들어야 했어요. 

저는 매일 아침 도서관에 갔어요. 저만의 스케줄이 필요했으니까요.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는데요, 책도 읽고, 동영상도 보고, 하고 싶은 것들을 했었죠. 근데 그 도서관이 아빠 회사와 5분 거리에 있었어요. 일부러 아빠가 아침에 출근할 때 아빠 차로 같이 가서 아빠는 회사로 출근하고, 저는 도서관으로 갔지요. 

그러다 아빠가 문자를 하세요. 

"예나야, 우리 같이 햇빛 보러 갈까?"

그러면 아빠가 근무시간 중에 나와서 편의점에 가서 뭐 사 먹고 했어요. 그게 정말 좋았어요. 


선량 : 아빠와 정말 사이가 좋았군요. 저희는 아빠가 딸한테 햇빛 보러 가자고 한다면, "싫어, 더워!"라고 할 것 같네요. ㅎㅎㅎ


예나 : 네. 아빠와 사이가 정말 좋았어요. 물론 엄마와도 사이가 좋았지만요. 엄마는 처음에 피아노 레슨 일을 하시다가 나중엔 식당 일을 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엄마는 자유로운 시간이 별로 없었죠. 상대적으로 아빠는 시간이 좀 있으셨어요. 퇴근 후에 함께 공연도 보러 가고, 강연도 들으러 가곤 했어요. 많은 시간 중에서도 아빠와 보낸 시간이 지금까지 가장 좋은 기억, 강렬한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선량 : 힘들었던 것은 없었나요? 


예나 : 가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안개 낀 터널을 걷는 느낌이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좋아하는 걸 하면서도 뭔가 앞을 알 수 없는 안갯속 같은 기분이었어요. 제 또래 아이들은 수능을 위해 공부하고, 대학을 향해 나아갈 때 저는 좋아하는 걸 찾아다니고, 여행을 다녔으니까요. 경쟁사회에 있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저에 대한 결과물이 없으니 막막했던 것 같아요. 점수가 없고, 기준점이 없었으니까요. 내가 어느 위치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대학에 꼭 가야 하나? 그런 생각도 많이 했고요. 



선량 : 나랑 비슷한 환경을 경험해 본 사람이 바로 앞에 있다면 그 사람이 나의 기준점이 된다거나 적어도 미래에 대한 방향성이 잡힐 텐데,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정말 불안할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예나 씨가 독보적인 존재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두려움도 컸을 것 같네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 예나 자매가 탈학교 학생들의 기준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대학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했지만, 대학을 가셨잖아요? 그것도 수능을 보지 않고 가셨다면서요? 

한국에선 수능을 보지 않는 학생을 거의 실패자로 보는 시선이 강한데요, 예나 씨가 어떻게 대학을 가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도 무척 궁금하네요. 


다음 시간엔 예나 씨의 대학 생활과 대학원 생활에 대해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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